숙의원씨(淑儀元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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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숙의원씨 |
| 한글표제 | 숙의원씨 |
| 한자표제 | 淑儀元氏 |
| 분야 | 왕족/후궁 |
| 유형 | 인물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
| 왕대 | 선조~인조 |
| 집필자 | 홍연주 |
| 봉작 | 숙의(淑儀) |
| 출신 | 왕족 |
| 성별 | 여자 |
| 본관 | 원주(原州) |
| 주거지 | 서울 |
| 조부 | 원계량(元季良) |
| 부 | 원수신(元守身) |
| 모_외조 | 경주 김씨(慶州金氏) : 김호열(金好說)의 딸 |
| 처_장인 | (남편)광해군(光海君) →무후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숙의원씨(淑儀元氏) |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 『인조실록』 1년 9월 14일 | |
총론
[?~? = ?].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군(光海君)의 후궁.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전라우수군절도사(全羅右水軍節度使) 등 무관직을 역임한 원수신(元守身)이며, 어머니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호열(金好說)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원계량(元季良)이다.
광해군의 후궁
원숙의(元淑儀)가 언제 광해군의 후궁으로 입궁하였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1616년(광해군 8) 원수신의 딸의 혼인을 금하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즈음 후궁에 간택되어 입궐한 것으로 보인다.[『응천일록(凝川日錄)』권1]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폐위되면서 원숙의는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인조실록』 1년 9월 14일)
묘소와 후손
원숙의의 무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원숙의는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청선고(淸選考)』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응천일록(凝川日錄)』
- 지두환, 『광해군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