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홍씨(肅嬪洪氏)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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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숙빈홍씨 |
한글표제 | 숙빈홍씨 |
한자표제 | 肅嬪洪氏 |
분야 | 왕족/후궁 |
유형 | 인물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종~성종 |
집필자 | 정주영 |
봉작 | 숙빈(肅嬪) |
출신 | 왕족 |
성별 | 여자 |
본관 | 남양(南陽) |
주거지 | 서울 |
증조부 | 홍유룡(洪有龍) |
조부 | 홍덕보(洪德輔) |
부 | 홍심(洪深) |
모_외조 | 파평 윤씨(波平尹氏) : 윤규(尹珪)의 딸 |
형제 | (남자 형제)홍긍(洪矜), 홍응(洪應), 홍이(洪儞), 홍항(洪恒), 홍흥(洪興) (여자 형제)임한(任漢)의 처, 노선필(盧先弼)의 처, 기윤철(奇允哲)의 처 |
처_장인 | (남편)문종(文宗) →(자녀)1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숙빈홍씨(肅嬪洪氏)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9년 4월 9일, 『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세종실록』 11년 10월 15일, 『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세종실록』 13년 1월 19일, 『세종실록』 13년 2월 12일, 『세종실록』 13년 3월 13일, 『세종실록』 13년 3월 15일, 『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세종실록』 18년 12월 28일, 『세종실록』 23년 7월 24일, 『단종실록(端宗實錄)』 즉위년 8월 7일, 『문종실록(文宗實錄)』 즉위년 7월 8일, 『단종실록』 즉위년 8월 7일, 『단종실록』 1년 12월 14일, 『단종실록』 2년 1월 6일, 『단종실록』 2년 1월 8일, 『세종실록』 26년 12월 4일 |
총론
[?~? = ?]. 조선 5대 임금인 문종(文宗)의 후궁.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문종이 세자(世子)이던 때 세자의 후궁으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하고 세조(世祖)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봉해진 홍심(洪深)이며, 어머니는 이조 참의(參議)를 지낸 윤규(尹珪)의 딸인 파평 윤씨(波平尹氏)이다. 할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 영사(領事)에 추증된 홍덕보(洪德輔)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시랑(侍郞)을 지낸 홍유룡(洪有龍)이다. 남동생인 홍응(洪應)은 좌의정을 지냈고, 홍응의 아들이자 홍숙빈의 조카인 홍상(洪常)은 덕종(德宗)과 소혜왕후(昭惠王后)의 딸인 명숙공주(明淑公主)와 결혼하였다. 문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와서 성종(成宗) 때까지 왕실의 어른으로서 대우 받았다. 슬하에 1녀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문종의 후궁
홍숙빈(洪肅嬪)은 아버지인 홍심과 어머니인 윤규의 딸 파평 윤씨와의 사이에서 5남 3녀 중의 차녀로 태어났다. 1427년(세종 9) 세종은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김오문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아 휘빈(徽嬪)에 봉하였으나,(『세종실록』 9년 4월 9일) 김휘빈은 문종에게 압승술(壓勝術)을 사용하다가 발각되어 폐출되었다.(『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이어 1429년(세종 11) 세종은 봉여(奉礪)의 딸을 두 번째 세자빈으로로 삼고 순빈(純嬪)으로 봉하였다.(『세종실록』 11년 10월 15일) 그러나 봉순빈과 문종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후사를 걱정한 세종은 세자인 문종의 후궁을 들이기로 결정하였다.(『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1431년(세종 13) 세자인 문종의 후궁 간택이 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때 가산군지사(嘉山郡知事)권전(權專)과 직예문관(直藝文館)정갑손(鄭甲孫), 장흥고(長興庫) 직장(直長)홍심의 딸이 선택되었다.(『세종실록』 13년 1월 19일) 이에 세종은 홍심에게 쌀과 콩 30석을 내려주었고, 한 달 후 홍심의 딸을 승휘(承徽)로 봉하였다.(『세종실록』 13년 2월 12일),(『세종실록』 13년 3월 13일),(『세종실록』 13년 3월 15일)
한편 문종의 세자빈이던 봉순빈은 시기와 질투가 심해서, 문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지 못하는 것에 원망과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문종의 후궁으로 들인 권승휘(權承徽)가 임신을 하자 더욱 분개하고 원망하였으며,[『세종실록』세종 18년 10월 26일 2번째기사] 이후 여러 기행을 벌이다가 궁인 소쌍(召雙)과 동침한 일이 발각되어 폐출되었다.(『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세자빈 봉순빈이 폐출된 후, 세종은 새 세자빈을 간택하기 위해 서울과 지방의 명가의 딸 몇 사람을 선택하였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새 세자빈으로 당시 문종의 후궁 가운데 간택하기로 하고, 권양원(權良媛)과 홍승휘(洪承徽)가 후보에 올렸다. 그 결과 권양원이 홍승휘보다 나이가 조금 많고 관직도 높으며, 이미 딸[훗날의 경혜공주]을 낳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세자빈에 봉해졌다.(『세종실록』 18년 12월 28일) 그러나 세자빈 권씨는 문종이 세자일 때 훗날 단종(端宗)이 되는 아들을 낳은 후 곧 세상을 떠났다.(『세종실록』 23년 7월 24일)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홍승휘는 귀인(貴人)으로 봉해졌다.(『단종실록(端宗實錄)』 즉위년 8월 7일) 그리고 문종이 단종의 어머니를 현덕왕후(顯德王后)로 추숭하고 왕비를 새로 뽑지 않았다.(『문종실록(文宗實錄)』 즉위년 7월 8일) 이에 중궁을 다스릴 사람이 없었으므로 홍숙빈이 내전을 다스리게 되었다.[『문종실록』문종 즉위년 8월 5일 2번째기사] 그리고 2년 후인 1452년(단종 즉위년) 귀인에서 숙빈으로 봉해졌다.(『단종실록』 즉위년 8월 7일)
이후 홍숙빈은 성종 때까지 왕실의 어른으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1453년(단종 1)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죽은 후에는 안평대군의 집을 하사받았으며,(『단종실록』 1년 12월 14일) 단종의 비(妃)를 간택하는 자리에는 왕실의 어른으로 참석하기도 하였다.(『단종실록』 2년 1월 6일),(『단종실록』 2년 1월 8일) 또한 1455년(단종 3)에는 여러 도(道)에 사는 난신(亂臣)의 노비 20구를 받았고,[『단종실록』단종 3년 1월 24일 44번째기사] 1485년(성종 16)에는 속공 노비(屬公奴婢)를 줄 것을 청하여 80구를 받기도 하였다.[『성종실록(成宗實錄)』성종 16년 8월 4일 1번째기사]
묘소와 후손
홍숙빈은 문종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4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세종실록』 26년 12월 4일)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문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