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교(水標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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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수량을 재는 수표(水標) 옆에 놓인 평석교 형태의 다리.

개설

수표교는 청계천에 놓인 다리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설치된 위치는 바뀌었지만, 조선시대 도성 내의 다리 중 원형이 잘 남아 있어서 광통교(廣通橋)와 함께 중요한 다리이다.

청계천은 인공적으로 물길을 만든 하천이다. 도성을 둘러싼 목멱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등에서 발원하여 도성 중심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에서 합류한다. 길이는 11㎞에 달한다. 청계천에는 모전교(毛廛橋), 광통교, 장통교(長通橋), 수표교, 하랑교(河浪橋), 효경교(孝經橋), 마전교(馬廛橋), 오간수문(五間水門), 영도교(永渡橋) 등 많은 다리와 수문이 설치되었다. 수표교는 청계천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모교, 광통교, 장통교 다음에 있는 네 번째 다리로 중부 장통방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청계천로 2가와 3가의 중간쯤이다.

원래 이름은 마전교(馬前橋)였으나, 1441년(세종 23) 다리 서쪽의 물속에 수량 측정을 위한 수표를 세운 다음부터 수표교라고 부르게 되었다(『세종실록』23년 8월 18일). 숙종대에 청계천 남쪽 남부 훈도방에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영희전을 세운 후, 영조가 이 다리를 건너 영희전에 행차하곤 했다.

내용 및 특징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석재를 가로질러 깐 널다리인 평석교(平石橋)이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27.5m, 폭 7.5m, 높이 4m로 측면에서 보면, 교대 사이에 5개씩 9열로 교각을 세웠다. 교각은 장대석 길이로 두 단을 쌓았으며,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물이 흐르는 방향에서 대각선으로 세웠다. 그 위에 길이 4~5m 정도의 멍에석을 놓았다. 멍에석은 귀틀석 바깥으로 돌출되었으며 끝을 둥글게 다듬었다. 멍에석 위에는 귀틀석을 놓아 청판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난간석은 바깥쪽 귀틀석에 설치했으며, 난간 기둥에 돌란대를 끼우고 난간동자로 돌란대를 받쳤다.

중앙부 하부 교각에는 ‘경진지평(庚辰地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경진년(庚辰年)인 1760년(영조 36) 청계천 준설과 함께 새긴 것으로 이후 개천 준설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흙·모래가 교각에 새겨진 글자 어디까지 쌓였는지를 보고 준설의 정도를 판단했다.

수표석은 수표주에 10자(1자=21.875㎝)까지 눈금을 표시하고 장마 시 수위의 변동 상황을 수시로 한성부에 보고하여 대비토록 하였다. 처음에는 수표석을 목재로 만들어 쇠갈고리와 돌로 고정하였으나(『세종실록』23년 8월 18일) 성종대에 돌로 교체했다.

현존하는 수표석은 순조대에 다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표석 하부에는 ‘계사경준(癸巳更濬)’이라고도 새겨 있는데, 계사년인 1833년(순조 33) 2월에서 4월까지 대대적인 준천 사업이 시행되었으므로 이때 교체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수표석은 네모난 받침석 위에 높이 3m, 폭 20㎝의 육각형 화강석을 세우고 맨 위에 옥개석을 얹었다. 정면에 1자 간격으로 10자까지 눈금을 새겼고 눈금 사이에 아래부터 숫자를 새겼다. 측면에는 3·6·9자에 구멍을 파서 각각 갈수(渴水), 평수(平水), 대수(大水)라고 표시했다. 6자 안팎의 물이 흐를 때가 보통 수위고 9자가 넘으면 위험 수위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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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수표교는 조선시대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가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철거되어 홍제동으로 옮겨졌다. 1965년에는 장충단공원으로 옮겼으며 시도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수표석은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청량리세종대왕기념관에 있다.

참고문헌

  • 『日省錄』
  • 서울특별시, 『수표교 정밀실측 및 기본설계 보고서』, 2005.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건축사』, 서울특별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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