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전(修政殿)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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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수정전 |
한글표제 | 수정전 |
한자표제 | 修政殿 |
상위어 | 경복궁(景福宮) |
관련어 | 갑오개혁(甲午改革), 검서청(檢書廳),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기흥문(岐興門), 수정문(修政門), 숭양문(崇陽門), 습회당(習會堂), 영화문(永化門), 육선루(六仙樓), 융지문(隆智門), 장원당(章元堂), 청운문(晴雲門), 협오당(協五堂) |
분야 | 왕실/왕실건축/궁궐건축물 |
유형 | 건축·능·원·묘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고종 |
집필자 | 이혜원 |
건립시기/일시 | 1867년(고종 4) 6월 |
장소 | 경복궁 |
규모(정면/측면/칸수) | 정면 10칸/측면 4칸/총 40칸 |
양식 | 이익공, 팔작지붕 |
관련 인물 | 고종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수정전(修政殿)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4년 11월 16일, 『고종실록』 12년 5월 28일, 『고종실록』 31년 12월 16일 |
고종대에 중건한 경복궁 근정전 서쪽의 편전.
개설
수정전은 고종대 경복궁 중건 시 내전과 외전의 전각이 대부분 준공된 후에 지었으며 조선초기의 경복궁이나 조선후기의 창덕궁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전각이다. 수정전은 남쪽의 숭양문(崇陽門), 영화문(永化門), 수정문(修政門)까지 삼중의 행각과 월대를 갖추었고, 지붕에 양상도회를 하는 등 사정전 못지않은 전각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위치 및 용도
근정전(勤政殿)의 서쪽, 경회루(慶會樓) 남쪽에 위치한다. 조선초기 집현전(集賢殿)이 있었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집현전의 위치는 대략 수정전의 남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전 서쪽은 궐내 각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북궐도형(北闕圖形)」에 의하면, 수정전의 서쪽에는 대전장방(大殿長房), 내반원(內班院), 대전수라간 등 왕을 수발하는 부서가 위치하고 있다.
1867년(고종 4) 11월 16일, 경복궁의 중건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 왕이 경복궁 근정전에 나아가 하례를 받고 새로운 궁궐의 준공을 기념하여 교문을 반포하였다(『고종실록』 4년 11월 16일). 다음 날 수정전에서 시원임 대신들의 문안을 받고 덕담을 나누었다. 그다음 날은 사정전(思政殿)에서 영건도감(營建都監)의 관원들을 포함하여 신하들을 만났다. 따라서 경복궁에서 전각의 위계를 근정전, 수정전, 사정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수정전의 사용 예를 보면 각 단묘에 제사를 지낼 때 향과 축문을 내리거나, 신하들이 올린 전문(箋文)을 받고, 군사방(軍士房) 승지(承旨)의 소견이나, 입격한 유생의 소견, 신하의 예를 받는 것을 수정전에서 행하고 있어서 사정전 외에 또 다른 편전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종대에 근정전에서 이루어지는 의례에서 국왕이 친림할 때 출발하는 장소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정전의 사정문(思政門)과 수정전의 영화문(永化門)이다. 영화문은 수정문과 숭양문(崇陽門) 사이에 있는 중행각의 문이다. 즉, 경복궁 중건 시 수정전의 기능은 기존의 편전 건물인 사정전 이외에 별도로 편전의 기능을 강화하고 때로는 정전에서 치러야 할 의례를 거행하는 것이었다.
고종의 즉위 초기에는 사정전과 수정전을 같이 운영하다가 점차 수정전으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1872년(고종 9) 고종의 어진이 처음으로 제작되자 1875년(고종 12)까지 수정전에 이를 보관하였으며(『고종실록』 12년 5월 28일), 어진을 건청궁(乾淸宮)의 관문각(觀文閣)으로 옮긴 이후에는 다시 고종 초기와 같이 편전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수정전의 외삼문인 숭양문 남쪽은 빈터인데 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흥례문(興禮門) 서행각에 있는 유화문(維和門)과 마주보는 위치에 기흥문(岐興門)이라는 사주문이 있다. 이 문 안쪽에는 빈청, 정원(政院, 승정원), 당후(堂后, 승정원 주서), 선전관청 등 궐내 각사가 모여 있다. 정원의 동쪽 누마루는 당호가 육선루(六仙樓)인데 육선은 승정원의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등 여섯 승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궐내 각사의 동쪽 문이 기흥문이라면, 서쪽인 영추문(迎秋門)에서 들어서서 어구를 건너면 궐내 각사 영역의 대문인 청운문(晴雲門)이 있다.
변천 및 현황
수정전의 기능과 주변 행각에 변화가 생긴 것은 1895년(고종 32) 2차 갑오개혁 때 의정부(議政府)를 내각(內閣)으로 고치고 수정전을 내각의 청사인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로 정하면서부터이다. 내각 청사로 바뀌면서 원래는 북행각 쪽으로 연결되어 있던 복도가 철거되고 수정전 좌우에 복도가 설치되었으며 중행각과 외행각의 규모가 확장되는 변화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수정전은 전시관 등으로 전용되어 내부의 바닥 구조가 변형되었다. 2000년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수정전은 남쪽에 세 겹의 행각이 있어서 숭양문→영화문→수정문을 통하여 수정전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북궐도형」에는 북행각에 융지문(隆智門)이 있고 습회당(習會堂), 협오당(協五堂), 장원당(章元堂)의 당호가 적혀 있다.
수정전은 정전과 정침에만 설치되는 월대를 갖추고 있으며 지붕마루에 양상도회를 하고 취두와 용두, 잡상의 지붕장식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이익공이다. 평면 구성은 정면이 10칸으로 짝수이며 중앙에 3칸 대청을 두고 동온돌 3칸, 서온돌 2칸, 그리고 좌우에 툇간이 있으며 전툇간이 넓은 점이 특징이다.
관련사건 및 일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의정부를 경복궁 안에 옮기되 내각으로 고쳐 부르고, 장소는 수정전으로 하였다(『고종실록』 31년 12월 1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궁궐지(宮闕志)』「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북궐도형(北闕圖形)」
- 이혜원, 「경복궁 중건이후 전각구성의 변화-「경복궁배치도」와 「북궐도형」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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