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자대전(宋子大全)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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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송자대전 |
한글표제 | 송자대전 |
한자표제 | 宋子大全 |
분야 | 시문집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정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송시열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87 |
권책수 | 215권 102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송자대전(宋子大全)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시문집이다.
개설
『송자대전(宋子大全)』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의 시문집으로, 1787년(정조 11)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운관본 『우암집(尤庵集)』의 본집과 별집, 『경례문답(經禮問答)』·부록, 연보 등과 황강본을 대본으로 하여, 이를 교정·첨삭하고, 『주자대전(朱子大全)』의 편차방식에 따라 엮은 것이다.
최초의 판본은 송시열의 사후에 문인 권상하(權尙夏)가 100여 권으로 편집한 것인데, 간행하지는 못했다. 1717년(숙종 43) 민진후(閔鎭厚)가 경연에서 문집 간행을 건의했고, 왕이 윤허하여, 교서관에서 『우암집』이란 명칭으로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이후 『경례의의』·부록·별집·연보 등을 계속 출간했다.
정조가 즉위한 후 전서 간행을 명령함에 따라, 송시열의 5대손 송환기(宋煥箕, 1728~1807)와 이민보(李敏輔)·김희(金憙) 등이 유문을 수집·교정하여, 1787년(정조 11)에 출간했다. 1929년 후손과 유림이 힘을 합쳐 복간했는데, 『송서습유(宋書拾遺)』 4책과 『속습유(續拾遺)』 2책을 더해 총 225권 108책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대의 개인문집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의 문집으로, 표제를 『송자대전』이라 한 것은 송시열의 문인들이 그를 공자·주자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존칭하여, ‘송자(宋子)’라 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1717년 왕명으로 운각활자본(芸閣活字本)으로 간행된 『우암집』과 『경례문답』에 부록· 연보 등을 합하여, 1787년에 간행하였다. 평안감사이명식(李命植)의 주선으로 총 236권(원편 215권, 목록 2권, 부록 19권), 102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평안감영에서 간행되었는데, 이를 기영본(箕營本)이라고도 한다.
이 문집은 그 체재가 『주자대전』의 편찬 방식에 따른 것이 특징인데, 권두에 편찬 원칙을 밝힌 18칙(則)의 범례(凡例)가 있다. 그리고 어제(御製) 묘비명과 제문, 어필(御筆)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주로 소(疏)·차(箚)·서(書)·명(銘)·축문·제문·신도비명(神道碑銘)·묘갈명(墓碣銘)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벌(北伐)과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을 주장한 송시열의 정치적· 사상적 입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1649년(효종 즉위) 효종이 즉위하자, 왕에게 올린 ‘기축봉사(己丑封事)’는 내수외양(內修外攘)을 강조한 유명한 논설이며, 문집에 수록한 수천 통의 서찰은 김집(金集)·이유태(李惟泰)·민정중(閔鼎重)·김수항(金壽恒)·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 등과 교유하면서, 생겨난 노론·소론의 대립과정을 밝혀주는 중요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 정치 사상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예학과 성리철학에 대한 다양한 논설과 문장이 많아서 이이(李珥)에서 김장생(金長生)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송시열의 학문관이 나타나 있다.
서지 사항
215권 10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이고, 반엽광곽은 23.3×16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 상하내향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3×22.3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1929년 후손과 유림이 힘을 합쳐 복간했는데, 『송서습유』 4책과 『속습유』 2책을 더하여, 총225권 108책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대의 개인문집으로는 최대 규모의 책이다. 권두에 목록과 ‘어제묘비명(御製墓碑銘)’을 실었다. 권1~4는 목록·부·시이다. 권5에는 ‘기축봉사’와 ‘정유봉사’를 수록했다. 권6~21은 소차(疏箚)·계사(啓辭)로 300편이 넘는 상소에는 정책에 관한 것과 군도(君道), 주자 존숭(尊崇), 문묘종사, 북벌 등 주요현안에 관한 글이 상당수 있으며, 사직소들에도 정치적 상황이 많이 서술되어 있다. 권22~26은 서(書)·계(啓)·헌의(獻議)이다.
헌의에는 당시 문제가 되었던 예제에 관한 의논이 많다. 권27~129는 서로 연대순과 사람별로 배열했는데, 교류한 사람은 약 580명이며, 편수는 5681편이다. 또한 태극(太極)·이기(理氣)·격치(格致)와 같은 성리학의 개념에 대해 문답한 글이 많아, 저자의 사상을 보여주는 기본 자료가 된다. 다른 학파의 개념과 비교하며 논변한 글도 많은데, 이이와 성혼의 학설을 옹호하고, 이황의 학설을 비판한 글이 많다. 권치도에게 보낸 글에는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하고, 윤선거(尹宣擧)를 배척하게 된 경위가 적혀 있다.
권130~136은 잡저 89편으로 역시 성리학에 관한 소논문이 대부분이다. 앞부분에 1640년(인조 18)에 『맹자(孟子)』의 ‘호연장(浩然章)’을 주희의 설에 입각하여 풀이한 ‘호연장질의’와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를 수록했다. ‘간서잡록(看書雜錄)’은 저자가 독서하면서, 의심나는 부분을 기록하고 여러 학자의 설과 비교한 것이다.
정적이었던 윤휴를 비판하는 글도 상당수 있다. 이황 학설에 대해 비판한 글도 많은데. ‘퇴계사서질의의의(退溪四書質疑疑義)’는 이황의 ‘사서질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글이다. 권140~151은 기(記)·발(跋)·명(銘)·잠(箴) 등이다. 권152·153은 제문, 권154~201은 비문·묘갈명·묘지·시장(諡狀) 등이다. 권206~215는 행장과 전(傳)이다.
비문류와 행장의 대상인물은 정몽주·조식·백인걸 등 선유(先儒)의 것도 있고, 정철·조헌·김인후·김장생·김집·이식·장유·유계·김상헌·김수항 등 역대 서인과 노론 학통의 주요인물을 망라하고 있다. 전에는 척화론자인 3학사와 임경업(林慶業)·이사룡(李士龍) 등 충신 용사와 효열(孝烈)의 전기를 수록했다. 부록은 19권으로 교서·사제문·어록 등이다.
어록에는 산발적이지만, 호포론·서얼허통·결혼의 촌수 제한 문제·북벌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제자들과의 대담과 그가 만난 인물들에 관한 평가와 일화가 상당히 많다. 습유는 9권으로 서간과 잡저, 경연강의 등이 있다. 잡저의 ‘악대설화(幄對說話)’는 1659년(효종 10) 3월 효종과 북벌문제를 논의한 것을 정리한 글로 북벌에 대한 효종의 구상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17세기의 정치·사회 상황과 노론 기호학파의 사상동향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자료이다.
참고문헌
- 박준호, 「『宋子大全』 간행에 관한 연구-『掃塵錄』과 『尊衛案』의 내용을 중심으로-」, 『서지학보』 제36호, 한국서지학회, 2011.
- 신승운, 「宋子大全의 編刊과 그 傳記資料的 價値」, 『서지학연구』 제13집, 한국서지학회, 1997.
- 오항녕, 「尤菴 宋時烈 문집의 편찬과 간행」, 『한국사학보』 제33호, 한국사학회, 2008.
- 우경섭, 「尤庵 宋時烈 硏究의 現況과 課題」, 『한국사상과 문화』 제44집, 한국사상문화학회, 2008.
- 전재동, 「송시열(宋時烈)과 박세채(朴世采)의 퇴계설(退溪說) 비판(批判)-『퇴계사서질의 의의(退溪四書質疑疑義)』 “논어(論語)”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한문학연구』 제42호, 한국한문학연구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