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향진전의(俗節享眞殿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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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매년 정조, 동지, 한식, 단오, 추석 등의 속절(俗節)에 외방의 진전(眞殿)에서 제향을 올릴 때의 의절.

개설

조선시대에 외방의 태조 진전으로 준원전(濬源殿)을 비롯하여, 평양 영숭전(永崇殿), 개성 목청전(穆淸殿), 경주 집경전(集慶殿), 전주 경기전(京畿田) 등이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이밖에도 세조 진전인 봉선전(奉先殿)이 경기도 양주 광릉 봉선사(奉先寺)에 있었다. 그중 준원전과 전주 경기전 2곳은 조선후기에도 존속하였고, 나머지는 전란의 와중에 파괴되었다. 조선 숙종대에 세조와 원종의 어진을 봉안하였던 남별전(南別殿)을 증건하여 태조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남별전은 후에 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차례로 봉안하면서 대표적인 국가 진전으로 기능하였다.

연원 및 변천

진전 제향은 『세종실록』 「오례」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변사(辨祀) 조에 진전 제향이 문소전, 의묘, 산릉 제향과 함께 속제로 분류되어 있다. 진전에는 속절에만 제향을 올리도록 했으며, 그 의주가 수록되어 있다. 진전 제향의 헌관(獻官)은 관찰사(觀察使)이며 관찰사가 유고할 때에는 소재 읍의 장관이 맡았다. 재계전사관(齋戒典祀官)은 소재 읍의 좌이관(佐貳官), 전사(典祀)는 참봉(參奉), 대축(大祝)은 교수(敎授), 찬자(贊者)와 알자(謁者)는 본읍의 학생이 맡도록 했다.

조선후기에는 영희전(永禧殿) 의례가 크게 늘어 진전 제향과 작헌례(酌獻禮)에 대해 논의하였고(『영조실록』 22년 5월 2일), 진전에서의 친림작헌례(親臨酌獻禮)와 친향의(親享儀)를 새로 마련하였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 준비 과정과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분된다. 준비 과정은 재계(齋戒), 진설(陳設) 등이다. 당일의 의례는 사배례(四拜禮), 삼헌(三獻), 음복(飮福), 철변두(撤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일을 말한다. 진전 속절 제향의 경우는 제향에 참가하는 인원들이 각기 깨끗이 재계하고 정침에서 하루를 자도록 했다.

진전 제향 하루 전에 진설을 시작한다. 먼저 진전 문을 열고 안팎을 청소한다. 헌관과 음복위 등 행례할 자리를 설치한다. 당일에는 신실의 문을 열고 먼지를 떨고 축판·향로·향합·초·제기를 진설하고, 음복 잔을 전소(奠所)에 설치한다.

제사 준비를 다 마치면 제삿날 축시(丑時) 5각 전에 전사가 사당문을 열고 신주 모신 곳의 휘장을 턴다. 전사관(典祀官)과 전사가 과실과 찬물을 모두 갖추어 놓는다. 3각 전에 향관들이 들어와 북향하여 사배하고 자리로 나아간다. 1각 전에 향관들이 관세한다. 1각은 약 15분이다. 전사관과 집사들이 자리로 나아가 북향하여 서서 사배례를 올린다.

이어서 삼헌의 절차가 진행된다. 3번 향을 올리는 삼상향(三上香) 다음 초헌관(初獻官)이 술을 올린 후 절하고 일어나 꿇어앉는다. 대축이 축문 읽기를 마치면, 초헌관은 다시 엎드렸다가 일어나 제자리도 돌아간다. 아헌관(亞獻官)과 종헌관(終獻官)이 차례로 술을 올리는 의절을 행하고 물러난다.

다음 절차는 음복이다. 헌관이 음복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대축이 음복할 술을 따라 헌관에게 준다. 헌관은 꿇어앉아 마신 후 절하고 물러난다.

마지막으로 헌관, 전사관, 집사들이 사배례를 순서대로 행하면 예식이 끝난다. 전사관과 전사가 각기 소속 관원을 데리고 제물을 거두는 철변두를 행한 후 지게문을 닫고 물러난다. 축판은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고 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