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동문선(續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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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중종 13) 신용개(申用漑)ㆍ김전(金詮)ㆍ남곤(南袞)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시문집.

개설

『속동문선(續東文選)』은 1518년(중종 13) 신용개(申用漑)ㆍ김전(金詮)ㆍ남곤(南袞)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시문집이다. 1478년(성종 9)에 펴낸 『동문선』의 취지를 이어서, 『동문선』 편찬에 종사하였던 관료문인의 글과 성종에서 중종 연간의 문학유산을 대상으로 펴낸 시문선집이다.

『동문선』은 신라ㆍ고려 시대의 불교문화의 융성에 의해 불교관계의 문장이 특히 많았는데, 본서에는 성종 이후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문교정책이 거의 완성되어 유교중심의 문화로 전환된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즉 수록된 작가가 서거정ㆍ강희맹(姜希孟)ㆍ김수온(金守溫)ㆍ김종직(金宗直)ㆍ남효온(南孝溫)ㆍ김일손(金馹孫)ㆍ김시습(金時習)ㆍ박은(朴誾)ㆍ성현(成俔) 등 대부분 유학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유학자 중에서도 특히 김종직 등의 사림파의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사상의 주류가 사림계열로 넘어가는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속동문선』은 편찬이 완성된 시기인 1518년에 을해자 초인본(乙亥字初印本)으로 간행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거의 없어졌다. 그 뒤에 정속편 합본(正續編合本)이 나왔으나 역시 병화(兵火)에 거의 없어졌다. 1615년(광해군 7)에 훈련도감자인본으로 출판되었다.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필서체자 목판본(筆書體字木版本)으로 간행되기도 하는 등 여러 차례 인행하였다. 이 책은 본문이 21권 10책이며, 목록 2권을 합하여 23권 11책이다. 목록 권말에 김전의 서문과 46인의 찬집관의 관직과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의 이름이 들어 있다.

『동문선』의 취지를 이어 이후 40년 간 쓰인 여러 문사의 시문을 다시 초선(抄選)하라는 왕명을 받아 편찬된 것이므로, 이 책은 채록된 시대의 범위가 짧지만, 내용은 역시 『동문선』에 따라서 각종 시문을 종류ㆍ차례대로 편찬되었다.

이 책은 완성과 동시에 즉시 간행 반포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거의 인멸되었으므로, 1615년(광해군 7)에 서적교인도감(書籍校印都監)에서 정속편(正續編) 합본(合本)으로 재간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판본이 있다.

서지 사항

23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3.3cm 가로 21.3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속동문선』 서문에 “지난 성종 9년에 서거정(徐居正) 등이 『동문선』을 제진(製進)한 뒤 40년이 지났으니, 그 뒤에 나온 시문들을 다시 초집(抄集)하여,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속동문선』 편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ㆍ2는 사(辭)ㆍ부(賦), 권3은 오언고시, 권4는 고시(古詩), 권5는 칠언고시, 권6은 오언율시, 권 7ㆍ8은 칠언율시ㆍ칠언배율, 권 9ㆍ10은 오언절구ㆍ칠언절구ㆍ육언절구ㆍ잡체시(雜體詩), 권 11ㆍ12는 시책(諡冊)ㆍ애책(哀冊)ㆍ애사ㆍ명ㆍ찬(贊)ㆍ전(箋)ㆍ표(表)ㆍ상소(上疏)ㆍ격(檄)ㆍ책제(策題), 권13ㆍ14는 기, 권15ㆍ16은 서(序), 권17은 설ㆍ논ㆍ전(傳)ㆍ발ㆍ가요(歌謠), 권18은 잡저ㆍ상량문, 권19는 제문ㆍ청사(靑詞)ㆍ행장, 권20은 비명ㆍ묘지, 권21은 행록(行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속동문선』에 채집된 시문은 그 시대적 범위가 비교적 짧다. 구성은 『동문선』의 편집을 따라서, 각종 시문의 종류대로 순차적으로 편찬하였다. 문체 종류는 37종이며, 작품의 총수는 1,281편이다.

『속동문선』에 수록된 작가는 서거정ㆍ강희맹(姜希孟)ㆍ김수온(金守溫)ㆍ김종직(金宗直)ㆍ남효온(南孝溫)ㆍ김일손(金馹孫)ㆍ김시습(金時習)ㆍ박은(朴誾)ㆍ성현(成俔)ㆍ김흔(金昕)ㆍ어세겸(魚世謙)ㆍ손순효(孫舜孝)ㆍ홍귀달(洪貴達)ㆍ채수(蔡洙)ㆍ김심(金諶)ㆍ이승소(李承召) 등의 작품이 많이 실려 있다. 윤여형(尹汝衡)ㆍ어무적(魚無迹)의 작품도 상당수 있어서 다양하고 폭넓은 문학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1518년(중종 13)은 사림계열 진출의 극성시기이다. 그러므로 『동문선』에 비하여 여실하게 유학 중심으로 바뀌어졌다. 따라서 내용면에서 『동문선』과 차이가 있다. 『동문선』에는 신라ㆍ고구려 때의 불교에 관련된 문헌이 풍부하게 실려 있었으나, 『속동문선』에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완전히 유교문화 중심의 구성으로 전환되었다.

『속동문선』은 당시 신진 사림 층의 지도적 인물인 김종직의 작품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것은 이 책의 편찬과정과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일면이다. 『속동문선』은 중국에 보내는 표문(表文)을 모두 제외하고 있다. 이 점에서 자주적인 편찬의식의 일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8수의 의표(擬表) 외에 실용성을 지닌 표문은 전혀 배제하고 있다. 이 점은 훈구파가 사장(詞章)에 열중하여 표문을 중시하였던 것을 무언중에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문선』과 『속동문선』의 차이점을 통하여 약 40년 동안 문인들의 의식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속동문선』의 간행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 김두종, 『국역 동문선 해제』, 민족문화추진회, 1968.
  • 이경선, 『동문선』, 한국의 명저, 현암사, 1969.
  • 이우성, 『동문선해제』, 경희출판사,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