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헌(誠一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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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후궁 수빈박씨의 궁묘인 경우궁 내에 어진을 봉안하던 건물.

개설

경우궁(景祐宮)은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사친인 수빈박씨(綏嬪朴氏) 가순궁(嘉順宮)의 궁묘(宮廟)이다. 성일헌(誠一軒)은 그 영역 내에 있던 건물로서 1837년(헌종 3)에 순조와 익종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헌종 때 자주 전배(展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선원전(璿源殿)으로 어진을 옮겨 모셨다가, 다시 성일헌에 모셨다. 1886년(고종 23)에 인왕동(仁王洞)으로 경우궁을 옮겨 지을 때, 성일헌도 함께 옮겨 짓고 어진을 봉안했다. 이곳에 봉안한 어진은 1908년(융희 2)에 제사제도의 정리와 더불어 모두 선원전으로 옮겨지고, 성일헌은 경우궁과 더불어 국유화되었다.

위치 및 용도

성일헌은 경우궁 내에 있는 건물로 경우궁이 처음 건립되었던 당시에는 한성부 양덕방(陽德坊)에 있었고, 1866년에는 경우궁을 옮겨 지음에 따라 인왕동으로 옮겼다. 순조와 익종의 어진 봉안소로 사용되었다.

변천 및 현황

경우궁은 1824년(순조 24)에 순조의 사친인 수빈박씨 가순궁의 신위(神位)를 모시기 위해 북부 광화방(廣化坊)에 있던 용호영(龍虎營) 터에 지어진 궁묘이다(『순조실록』 24년 12월 1일). 1837년에 순조와 익종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성일헌을 두었지만 자주 전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진을 선원전으로 옮겨 모셨다가 다시 경우궁으로 옮겼다[『헌종실록』 헌종 대왕 묘지문].

1884년(고종 21) 10월에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開化黨)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경우궁은 고종의 이어소(移御所)로 쓰였는데, 정변을 일으킨 사람들이 경우궁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경우궁이 더러워졌다고 여겨 1885년(고종 22)에 육상궁(毓祥宮) 근처인 인왕동(현: 옥인동)으로 경우궁을 옮겨지었고, 성일헌도 함께 옮겨지었다(『고종실록』 21년 10월 17일). 1907년(융희 1)에 궁내부령으로 내수사(內需司)와 궁장토의 도장(導掌)을 폐하면서 경우궁에 소속된 토지는 제실 재산 관리국으로 넘어가고, 1908년에 건물은 국유화되었다. 아울러 어진은 모두 궁궐 내 선원전으로 옮겨 모셨다(『순종실록』 1년 7월 23일). 현재 성일헌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내각일력(內閣日曆)』
  • 『대동지지(大東地志)』
  •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조선왕실 건축도면』, 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 이찬, 『서울의 옛 지도』,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1995.
  • 허영환, 『정도 600년 서울지도』, 범우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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