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병부(盛京兵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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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청의 성경에 설치되어 주방(駐防), 봉금(封禁) 정책 등 군사 업무를 관장하였던 병부.

개설

청의 배도(陪都)였던 성경에 설치된 성경병부는 동북 지역의 방어를 위한 성경장군, 길림장군, 흑룡강장군을 비롯한 군대를 관장하여 러시아와의 국경 문제, 몽골 세력에 대한 견제, 조선 국경선을 둘러싼 마찰 등을 처리하였다. 봉금 정책이후 조선과 범월·강계·범금·교역 등의 각종 외교사안을 담당한 주된 관청으로 조선에서 중시하였다. 동북 지역의 전체(傳遞), 역참 등을 관장하였기 때문에 조선사행의 경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직 및 직무

1691년(강희 30) 흑룡강에 파견된 흑룡강장군까지 포함한 동북 지역 방어군사력을 효율적인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이후 성경병부는 중앙의 병부와 동일하게 군사방비 및 체송, 역참, 변방의 정사를 담당하고,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 몽골 세력에 대한 견제, 조선의 국경 지역에 대한 경계 등 성경을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에 대한 군사 업무를 총괄하였다. 성경병부의 편제는 시랑 1명, 좌사(左司) 낭중(郞中) 1명, 원외랑 2명, 주사 2명, 우사(右司) 낭중 1명, 원외랑 2명, 주사 2명, 당주사(堂主事) 2명, 필첨식(筆帖式) 12명, 역참의 정·부감독(正副監督) 각 1명, 역승(驛丞) 29명 등이 있어 주방(駐防), 역체(驛遞), 간계(簡稽), 군실(軍實)의 일을 담당하였다. 성경병부의 편제는 1691년(강희 30)에 정해졌다. 오직 원외랑은 처음 6명이었는데, 건륭 연간에 2명으로 줄었다.

외교적 기능과 사례

청의 입관 이후 동북 지역은 중원에서 진행되는 통일전쟁에 대한 후방 지원 및 만주족의 발상지로서 근원적인 의미가 있어 군사적으로 중시되었다. 청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방어를 위하여 성경총관을 두었으며, 이후 성경장군을 비롯한 3장군 체제를 갖추고, 이를 통괄하는 기능을 성경병부에 부여하였다.

성경병부는 러시아와의 마찰,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조선과 관련성을 가졌다. 주로 밀매와 잠채(潛採)를 위하여 범월하는 경우 이를 엄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지역에 대한 개발을 목적으로 조청 국경선 주변으로 지속적으로 군사적 마찰을 초래하였다. 조선은 청의 군사력을 통괄하는 병부에 대해 외교적으로 마찰을 피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국경에서 실시되는 개시의 경계를 담당하였던 성경병부는 단순히 군사적 역할을 넘어 교역에 관련된 외교교섭을 실제 진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사행의 역마지원 및 역참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성경병부는 사행의 운영에 가장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봉황성을 비롯한 각 역참 및 성에 주방한 병부 소속 아문은 조선사행의 공문수발 및 사행로에 관련되어 뇌물을 요구하는 등 외교 문제를 발생시켰다(『정조실록』 14년 6월 25일).

참고문헌

  • 『동문휘고(同文彙考)』
  • 『대청회전(大淸會典)』
  • 李雲泉, 『朝貢制度史論』, 新華出版社, 2004.
  • 김경록, 「조선후기 사대문서의 종류와 성격」, 『한국문화』 35, 2005.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의 접수·보존체계」, 『한국사연구』 13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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