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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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년(세조 10) 당(唐)나라 영가대사(永嘉大師)의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을 언해한 책.

개설

『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는 당나라의 영가선사가 수선(修禪)의 요결(要訣)을 찬술(撰述)한 『선종영가집』을 세조(世祖)가 구결(口訣)을 달고 신미(信眉)와 효령대군(孝寧大君) 등이 국역하여, 1464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한 책이다. 『영가집언해(永嘉集諺解)』라고도 하는데, 『선종영가집』을 『영가집(永嘉集)』이라 줄여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禪)을 수행하는 방법을 10가지로 나누어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본문에는 한글로 토를 달고 국역의 한글에는 방점을 찍었으며, 한자음은 『동국정운(東國正韻)』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당나라의 영가선사가 처음 『선종영가집』을 만든 후 당나라의 위정(魏靜)이 이것을 분문(分門)하여 편집하였다. 이어 송(宋)나라의 행정(行靖)이 주해를 하였으며, 정원(淨源)이 과문(科文)으로 정리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선종영가집』은 불교의 중요 서적으로 활용되었다. 세조 대에는 일본 및 유구국(琉球國)에 예물로써 여러 차례 보내지기도 하였다.(『세조실록』 5년 8월 23일),(『세조실록』 6년 9월 27일),(『세조실록』 13년 8월 14일) 세조 대에 만들어진 『선종영가집언해』는 정원이 정리한 것을 그 모본으로 한다.

서지 사항

상·하권의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경도감에서 간행하였다. 책의 크기는 세로 33.0cm, 가로 21.0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데, 표지는 상ㆍ하권이 모두 결락되었다. 본문의 권 상은 완전하며, 권 하는 77장까지 남아있고, 78장 이하는 낙장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판본은 특히 권 하의 권수제 위에 ‘교정(校正)’이 날인되어 있어 교정을 필했다는 인장이 있다. 상권은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하권응ㄴ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선종영가집』 한문본의 각 귀절마다 세조가 직접 한글로 토씨를 달고, 신미와 효령대군 등이 한글로 번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훈민정음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대에 나온 언해집으로 국어학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집전말(集箋末)에는 ‘천순팔년(天順八年 : 1464) 정월 초오일(正月 初五日) 도제조추충좌익공신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남원부원군(都提調推忠佐翼功臣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南原府院君) 신(臣) 황수신(黃守身) 등(等) 근상전(謹上箋)’이 있고, 발(跋)에는 ‘홍치팔년(弘治八年 : 1495) 추 팔월 하한 황악산 입학조(秋八月下澣黃岳山入學祖) 경발(敬跋)’이라는 기문(記文)이 기재되어 있다. 하권은 선(禪) 수행의 요결을 담고 있다.

『선종영가집언해』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문ㆍ설의ㆍ본문ㆍ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문과 설의는 승려인 함허당(涵虛堂)득통(得通)이 썼다. 본문은 다시 서의와 집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의는 세 부분인데 첫 부분은 주를 단 사람인 송나라 행정에 대한 언급이고, 둘째 부분은 서문을 쓴 당나라 정에 대한 언급이며, 셋째 부분은 위정이 쓴 서문의 내용이다. 본문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부분은 제목에 대한 언급이고, 둘째 부분은 정석 즉 본문 내용인 열 부분에 대한 동기를 간단하게 설명한 내용이고, 셋째 부분은 이 책의 실제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본문은 십문(十門) 즉 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선의 요체와 역정을 서술하였다. 발문의 부분에는 글자의 발음법과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 및 신미의 발문과 효령대군의 발문이 있다.

국어사 자료로서 보이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점은 언해문에만 표기되었으며, 본문과 과주(科注)의 구결에는 찍지 않았다. 둘째, 언해문의 한자에는 한자음이 병기되어 있는데, 『동국정운』 의 한자음과 같다. 셋째, 순경음 ‘ㅸ’은 고유어 표기에는 쓰이지 않고, ‘오/우/, ㅇ’로 바뀌었다. 넷째, 후음의 ‘ㆆ’은 주로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었다. 다섯째, 초성에서 각자병서 ‘ㄲ ㄸ ㅆ ㅉ ㆅ’은 보이나, ‘ㅃ ㆀ ㅥ’은 쓰이지 않았고, 합용병서 ‘ㅺ ㅼ ㅽ ㅳ ㅄ ㅶ ㅴ ㅵ’ 등은 쓰였지만, ‘ㅻ ㅷ’은 보이지 않는다. 여섯째, 종성표기에는 8종성 외에 ‘ㅿ’음이 쓰였다. 일곱째, 아음 ‘ㆁ’은 초성과 종성 표기에 모두 쓰였다. 여덟째, 사잇소리 글자는 ‘ㅅ’으로 통일하였다.

이 책의 간행에 도움을 준 신미는 세종(世宗)의 한글 창제에도 도움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최근 연구되고 있다. 여기서는 세종의 뒤를 이은 세조의 현토에 신미가 한글 번역을 하여 조선전기 한글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선종영가집언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글자와 말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조 때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간경도감본의 특징도 그대로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전기 불교학 및 판본 연구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직후의 국어를 반영하는 어학연구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감영배ㆍ김무봉, 「세종시대의 언해」, 『세종문화사대계』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8.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안병희, 「중세어의 한글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규장각』 3, 서울대학교 규장각, 1979.
  • 최현배, 『고친한글갈』, 정음사,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