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席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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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관아에 소속되어 돗자리를 짜는 장인.

개설

자리는 우리나라 특유의 온돌식 주거 구조에서 마루나 방의 습기와 냉기를 막아주고 바닥의 따뜻한 공기를 오래 보존해주어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이러한 돗자리는 왕골이나 골풀의 줄기를 잘게 쪼개서 돗틀 위에 올려놓고 짠다. 자리의 원료인 왕골[莞草]이 생산되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 392명의 석장(席匠)이 소속되어 다종다양한 돗자리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가에 공납하였다. 지방의 석장이 제작한 자리는 초석(草席)·유둔(油芚)·지물(紙物) 등을 관리하는 종6품 아문인 장흥고(長興庫)에 보관되었다. 장흥고에는 인장(茵匠) 8명이 소속되어 석장이 짠 자리를 중국에 공물로 보내거나 궁궐 전각에 깔 때 선을 두르거나 하나로 잇대는 등 갈무리를 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후기 궁궐에서는 왕실 행사를 거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도감마다 인석장(茵席匠)을 소속시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도감마다 인석장을 1명만 징발할 뿐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3~7명까지 인석장의 숫자가 증가하였으며, 그들은 다른 도감에서는 인장으로서 장기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담당 직무

석장은 외공장으로서 자리를 짜는 신역(身役)을 했다.

우선 외공장은 왕골의 산지에서 자리를 제작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각도 방물 목록에 의하면 경기도에는 왕골속을, 충청도에는 완석(莞席)을 공납하였다.

이렇게 공납된 자리 중 일부는 조선시대 내내 중국에 보내는 대표적인 조공품이었다. 조선초 중국에 보내는 방물표에 황화석(黃花席) 15장, 만화석(萬花席) 15장, 잡채화석(雜彩花席) 15장이 포함되어 있었다(『세조실록』 13년 10월 17일). 또 조선후기 인조 때는 청나라용골대(龍骨大)의 혼사에 화문석 60장을 보냈다(『인조실록』 20년 10월 28일).

변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에는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어 왕실이나 국가에서 사용하는 자리를 짰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신(社稷神)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고려 궁궐에서는 문석(文席), 채석(彩席), 화문대석(花文大席)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 화문석을 짜던 소(所)는 조선시대에 자리의 특산지로 계속 이어졌다. 세종대에 각 도의 석장들이 짜서 장흥고에 납부하는 돗자리의 수량은 5,148장이었다. 그런데 막상 1년간 국가에서 필요로 한 것은 2,216장이어서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480장은 없애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7년 8월 22일).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 ‘공장’조에 의하면 석장은 충청도에 58명, 경상도에 276명, 전라도에 58명으로 총 392명이 분포되었다. 이것은 27종의 외공장 중에서 698명의 지장과 466명의 야장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조선후기에도 화문석의 사용 계층은 늘었고 그 수량도 많아졌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화문석은 강화의 교동, 경상도의 의성을 최고로 쳤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예안 사람들은 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을 잘 만들고, 예안과 안동은 화문석이 최고이며, 용수초 화문석은 전남 보성과 함평 및 강화군 교동도에서 제작한다고 하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강화군 교동도에서 화문석이 생산되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경상도 전역에서 완초화문석이 생산된다고 하여 조선후기에도 자리는 지역의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조선후기에 왕실의 행사 때마다 임시로 도감을 설치하였다. 도감에서는 잔치가 벌어진 궁궐 정전이나 시신을 모실 빈전·혼전이나 제례를 드릴 종묘 등의 전각 내부의 전돌 바닥이나 대청마루에 자리를 깔기 위해 인석장을 동원하였다. 그들의 숫자는 대개 도감마다 1명이어서, 왕이나 왕후의 왕릉을 조성하기 위해 설치한 산릉도감 분장흥고에 불러들인 인장보다 숫자나 규모가 작다. 그중 대표적인 장인을 통해 그들의 처지와 직역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해동역사(海東歷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계림지(鷄林志)』
  • 『고려도경(高麗圖經)』
  • 『산림경제(山林經濟)』
  • 『여지도서(輿地圖書)』
  • 『규합총서(閨閤叢書)』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솔과학, 2013.
  • 장경희, 「조선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 『역사민속학』 25호, 2007.
  • 장경희, 「대한제국 홍릉 침전 내부의 공예품 연구」, 『한국공예논총』 13-2호, 2010.
  • 장경희, 「조선후기 왕릉 정자각 내부 의물 연구」, 『역사민속학』 3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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