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진강의(書筵進講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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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 서연(書筵)에 나가 강학(講學)하는 의식.

개설

왕세자가 서연에서 사(師)·부(傅)·빈객(賓客) 등의 서연관들과 함께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강(講)하는 의식이다. 조선에서는 왕세자 교육을 위해 서연을 설치하고 학문적 능력과 덕망을 갖춘 관료·학자들을 서연관(書筵官)으로 임명하여 강학을 담당하게 했다. 『세종실록』 「오례」에서 ‘서연진강의(書筵進講儀)’였던 명칭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서연회강의(書筵會講儀)’로 바뀌었으나, 의식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연원 및 변천

조선에서 왕세자 교육은 개국 직후 태조의 8남 이방석(李芳碩)을 세자로 책봉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서연 강학의 구체적인 규정은 1408년(태종 8)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정되었다. 당시 의정부(議政府)에서는 사간원(司諫院)과 권근(權近)이 건의한 내용을 절충하여 매일 서연을 열어 경서를 습독(習讀)하게 하고, 매일 한 차례씩 강론을 실시하여 이미 배운 것을 반복 학습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8년 12월 1일). 1413년(태종 13)에는 서연관들이 왕세자의 ‘강학사목(講學事目)’을 만들었다. 매일 새벽에 서연을 열어 이사(貳師) 이하가 돌아가면서 진강(進講)하는데, 경서와 사서를 2~3장씩 강하여 10차례 실시하고, 오후에도 5~10차례 실시하며, 배운 내용을 신시(申時)까지 복습하게 하는 내용이었다(『태종실록』 13년 9월 9일). 이어 1431년(세종 13) 6월 예조(禮曹)에서 서연의 진강 의식을 정하여 보고했으며(『세종실록』 13년 6월 4일), 세종은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매월 1일·11일·21일에 사·부·빈객·서연관이 함께 서연에서 진강한 후에 이들에게 주과(酒果)를 대접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3년 6월 20일). 이와 같은 내용들을 종합하고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하여 『세종실록』 「오례」에 ‘서연진강의’로 최종 정리하였다.

1455년(세조 1) 7월 서연에서 상언(上言)하여 왕세자의 강학에 서연관 2명과 사헌부(司憲府)·사간원 관원이 각 1명씩 참여하여 진강할 것을 건의하여 세조의 윤허를 받았다(『세조실록』 1년 7월 27일). 1483년(성종 14)에는 세자사(世子師)정창손(鄭昌孫)의 건의에 따라 매일 서연에 빈객 1명, 낭청(郞廳) 2명, 대간(臺諫) 1명이 참여하게 하였다. 아침에는 빈객이 진강하고, 낮에는 낭청이 입시(入侍)하여 아침에 읽은 것과 사흘 동안 배운 것을 복습하며, 매달 15일에는 사·부·빈객이 모여서 강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14년 2월 17일).

절차 및 내용

『세종실록』 「오례」에 실린 서연진강의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진강 당일에 인순부(仁順府)에서 왕세자와 사·부·이사·빈객·보덕(輔德) 등의 자리를 설치한다. 사·부 이하의 관원은 평상복을 입고 모두 서당에 집합한다. 좌중호(左中護)가 합문(閤門) 밖에서 외판(外辦) 즉 바깥의 준비가 끝났음을 아뢰면 왕세자가 평상복을 입고 자리에 나아간다. 보덕 이하의 관원이 뜰에 들어와 2번 절하고, 사·부·이사·빈객은 각자의 자리에 선다.

왕세자가 동쪽 계단으로 내려가 서고 사·부·이사·빈객은 들어와서 서쪽 계단으로 나간다. 사·부와 이사가 먼저 오르면 왕세자가 뒤에 오른다. 사·부·이사가 먼저 자리 앞에 나아가면 왕세자가 자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며, 사·부·이사도 머리를 조아리고 2번 절하여 답례하는 돈수답재배(頓首答再拜)를 행한다. 사·부·이사가 자리로 나아간 후 왕세자도 자리로 나아간다. 인순부에서 서안(書案)을 왕세자의 자리 앞에 둔다. 보덕 이하 관원과 익위(翊衛) 이하 관원이 각각 올라와 정해진 자리에 선다. 왕세자가 전날의 수업 내용을 강하고, 사·부는 규정대로 진강한다. 강을 마치면 보덕 이하의 관원이 먼저 내려가서 시립(侍立)하고, 사·부·이사·빈객이 내려오면 왕세자도 동쪽 계단 아래로 내려온다. 사·부·이사·빈객이 문을 나가면 왕세자는 내전으로 들어가고, 보덕 이하의 관원도 밖으로 나간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김문식 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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