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달(西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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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몽골의 서부를 가리키는 용어.

개설

서달(西㺚)은 서쪽 달단이라는 뜻으로 용어상으로는 몽골의 서부를 가리켰다. 그러나 몽골의 특정 지역을 한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리 쓰였다.

내용 및 변천

1368년 몽골제국의 황제 토곤테무르[妥懽帖睦爾, 順帝]가 명나라 군대에게 밀려 몽골의 본토로 돌아갔다. 그 이후 약 20년간 이른바 북원(北元)시대가 지속되었다. 이후 북원 왕조는 중원에 대한 잃어버린 지배권을 되찾기 위하여 20여 년간 노력하였지만 실패로 끝났고, 몽골인들은 원 제국 이전 시기와 같이 몽골고원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외국 땅에서 통치자로 있었던 권력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다투게 되면서 정치적 분열이 가속화하였다. 본토에 살아온 전통적인 귀족층은 중앙권력 및 대칸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였다. 그 세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오이라트였는데, 그들이 몽골 정통 대칸과 권력을 다툴 정도로 부상하면서 몽골은 크게 동몽골과 서몽골(즉 오이라트)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중국 명(明)대 사료에서는 동몽골은 ‘달단(韃靼)’으로, 오이라트는 ‘와랄(瓦剌)’ 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몽골 및 중국 측 사료에는 ‘서달’ 혹은 ‘서달단’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쪽 몽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 서단 또는 서달은 1680년대까지 동몽골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활동과 관련하여 서달이 등장하는데, 누르하치가 6월 8일에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성(遼東城)에 이르러 서달과 연합하여 화목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였다(『인조실록』 3년 6월 22일)는 기록이 있었다. 이때에 서달은 동몽골을 가리켰다.

하지만 1680년대 이후의 조선 사료에 등장하는 서달은 서몽골의 오이라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영조대에 오이라트 준가르 제국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청나라 황제가 심양(瀋陽)을 순수(巡守)할 때에 서달이 시기를 틈타 난을 일으킨 사건을 의주부윤이 조정에 보고한 기록이 있다(『영조실록』 30년 8월 8일).

참고문헌

  • А. Очир, Монголын ойрадуудын түүхийн товч, Сүхбаатар ХХК хэвлэлийн газар, 1992. (А. 오치르, 『몽골의 오이라드인 약사』, 수흐바아타르 출판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