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군(祥原郡)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평안도 상원군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상원군(祥原郡)은 고려시대에 군으로 승격한 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상원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상원군은 고구려 때 식달현(息達縣), 신라 때 토산(土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1322년(고려 충숙왕 9)에 공신(功臣)인 평양군(平壤君)조인규(趙仁規) 조모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하여 종4품의 지군사(知郡事)를 두었다. 다른 이름으로 토산(土山), 식달(息達), 금달(今達), 상산(祥山)이라고도 불렀다.

조직 및 역할

상원군은 고려시대에 종4품의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다스리다가, 조선이 건국한 후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에 따라 지군사를 종4품의 군수로 바꾸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군수와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군수는 관찰사의 지휘를 받으며 한 군의 행정·사법·군사권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고,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조선초기에는 평안도 평양부에 소속되어 평안도좌익병마(平安道左翼兵馬)를 겸하다가 성천진관(成川鎭管) 소속이 되었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상원군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3명, 각고 감관 9명, 중군 1명, 천총(千摠) 2명, 파총(把摠) 3명, 초관(哨官) 10명, 집사 6명, 군군관양청행수(郡軍官兩廳行首) 2명, 병방군관 2명, 양청집사 12명, 훈련반수 1명, 영장 1명, 집사 3명, 아전 29명, 통인(通引) 28명, 사령 13명, 군뢰(軍牢) 16명, 기수 40명, 관노 26명, 관비 30명이 있었다.

변천

조선이 건국한 이후 1466년에 군의 책임자인 지군사를 종4품의 군수로 명칭을 바꾸었다. 1798년(정조 22)에 상원군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평안감사가 올린 보고를 받고 군청 소재지를 읍에서 서북쪽으로 30리 지점에 있는 내로(內櫓)로 옮겼다(『정조실록』 22년 7월 4일).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 상원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