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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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신하가 청원, 건의, 진정 등의 일로 왕세자에게 올리는 보고 문서.

개설

상서(上書)는 신하가 왕세자에게 정무에 관하여 청원, 건의, 진정 등을 아뢸 때 보고하는 문서이다. 왕세자가 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할 경우에 한하여 사용되었다. 왕세자는 처결 내용을 하답(下答)으로 내려주거나 상서의 원본 말미에 처결 내용을 기재하고 달자인(達字印)을 찍어서 전해주었다. 상서의 보고 및 왕세자의 처결 절차는 승정원(承政院)에서 담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상서는 중앙과 지방의 관원이 왕세자에게 정무에 관하여 청원, 건의, 진정 등을 아뢸 때 보고하는 문서이다.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상소(上疏)에 해당한다. 주로 대리청정(代理聽政)이나 분조(分朝)와 같이 왕세자가 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할 때 사용하였다. 상서는 승정원을 통해 왕세자에게 보고되고 왕세자의 처결을 받았는데, 처결 내용을 하답이라고 하여 별도로 작성하여 내려주는 경우에는 상서의 원본은 승정원에서 보관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서의 원본 말미에 처결 내용을 기재하고 달자인을 찍어서 해당 관원에게 내려주었다.

왕세자가 대리청정할 때 상서에 관한 규정은 숙종대부터 확인된다. 이때에는 문서에 대한 명칭을 상서라 일컫고, 상서의 머리말 가운데 백배(百拜)를 재배(再拜)로 개칭하였으며, 상전개탁(上前開拆)을 세자궁개탁(世子宮開拆)으로 표기하도록 하였다(『숙종실록』 43년 8월 1일). 이와 같은 상서에 대한 규정은 영조대와 순조대에 시행된 왕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에도 그대로 준용되었다.

상서에 대한 문서식은 『전율통보(典律通補)』에 따르면, 첫 줄에는 상서를 작성해서 올리는 관원의 관직과 이름을 적었다[具銜臣姓名]. 다음 줄에는 상서의 머리글로 “진실로 황공하고 황공합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삼가 재배하고 왕세자 저하께 글을 올립니다[誠惶誠恐 頓首頓首謹再拜上書于王世子邸下].”라고 기재하였다. 이어서 본문은 ‘삼가 생각건대[伏以云云]’ 또는 ‘삼가 신이 생각건대[伏以臣云云]’라고 표기하였다. 결사 부분은 “신은 두려운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臣無任屛營祈懇之至 謹昧死以聞].”라고 끝맺도록 하였다. 다음 줄에는 상서를 작성한 날짜를 기록하는 부분으로 ‘연호기년모월모일(年號幾年某月某日) 단함신성서명(單銜臣姓署名)’과 같이, 연호와 연월일을 쓰고 상서를 올리는 관원의 직함과 성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와 함께 상서의 피봉(皮封) 형식은 상소와 동일하되, 상전개탁을 세자궁개탁으로 기재하고 합금처(合襟處)에는 ‘신(臣) 서명(署名) 근봉(謹封)’이라고 기재하였다.

상서의 실물은 아직까지 확인된 사례가 없지만 순조대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할 때 류상조(柳相祚)·류이좌(柳台佐)가 작성한 초본(草本) 사례를 통해 상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개인 문집이나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 관찬 사료에서도 상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전율통보(典律通補)』
  • 최승희, 『(증보판)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1989.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 연구」, 『고문서연구』 36 , 2010.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문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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