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上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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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구현(山口縣) 남동쪽에 있는 지명.

개설

산구현의 실진(室津)반도의 뾰족한 부분과 장도(長島)·축도(祝島)·팔도(八島) 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뇌호내해(瀨戶內海)의 요충지였다.

명칭 유래

뇌호내해의 서쪽 지역에 선박의 짐을 검사하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검문소는 관(關)을 붙여 이름하였는데, 현재 산구현에 해당하는 부분에도 상관(上關)·중관(中關)·하관(下關)이 설치되어 있었다. 상관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지명이 되었다.

자연 환경

실진반도의 뾰족한 부분, 장도, 축도, 팔도 등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실진지구(地區)의 건너편이고 상관대교로 본토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장도(長島)였다.

형성 및 변천

내호내해 서쪽 끝의 해역인 주방탄(周防灘)의 동쪽 입구에 해당하며, 이런 지형 때문에 예전에는 조호(竈戶)·조문관(竈門關)이라 불렀다. 중세에는 주방탄의 서쪽 입구을 하관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반대편에 있는 조호를 상관이라 불렀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에 의하면 1467년(세조 13)에 상관 태수(太守)를 칭한 겸예의취(鎌苅義就), 이듬해에는 상관수(上關守)를 칭한 옥야정길(屋野正吉)이 조선에 사자를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상관을 근거지로 하는 해적(海賊)이었다. 같은 시기 이곳의 영주(領主)였던 대내씨(大內氏)도 상관에 명나라로 보내던 선박인 약사환(藥師丸)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상관 지역에는 거주민이 많지는 않았던 듯한데, 1596년 명나라 사자를 수행하여 일본에 간 황신(黃愼)의 군관(軍官) 조덕수(趙德秀)·박정호(朴挺豪)가 일본에 관하여 보고한 내용 가운데 상관 지역에 인가(人家)가 적었다는 내용이 있다(『선조실록』 29년 11월 6일). 근세 시기가 되면 모리씨(毛利氏)가 평생촌(平生村) 남쪽에 있는 실진반도의 마을들과 부근의 섬을 포함하여 상관재판(上關宰判)이라고 칭하는 하나의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어 온 사자(使者)를 접대하기 위하여 해협에 면해 있는 장도에 별장을 세웠다. 1889년에 시행된 촌정제(町村制)로 상관(장도), 축도(암견도(岩見島)), 팔도(시도(矢島)) 3개의 섬을 상관촌(上關村)이라고 하였고, 1958년 2월 1일 실진촌(室津村)을 포함하여 상관정(上關町)이 되었다.

위치 비정

산구현 남동쪽, 웅모군(熊毛郡)

참고문헌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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