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주(山城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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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도부(京都府) 남쪽 지역을 일컫던 옛 지명.

명칭 유래

원래 산배(山背)·산대(山代)로 쓰였다. 고대정치의 중심지인 대화(大和)에서 보면 이곳이 산의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794년 환무천황(桓武天皇)이 평안경(平安京)에 수도를 설치하면서 산성으로 바뀌었다.

자연 환경

북쪽은 단파국(丹波國: 현 경도부·병고현(兵庫縣)), 동쪽은 근강국(近江國: 현 자하縣)·이하국(伊賀國: 현 삼중현 서부), 남쪽은 대화국(大和國: 현 내랑현(奈良縣)), 서쪽은 하내국(河內國: 현 대판부(大阪府))·섭진국(攝津國: 현 대판부(大阪府))·병고현(兵庫縣)·단파국(丹波國)과 접하고 있다. 경도분지와 남쪽으로 이어진 목진천(木津川)을 끼고 남북으로 좁고 긴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진천 외에 정천(淀川)·우치천(宇治川)·계천(桂川)·압천(鴨川: 하무천(賀茂川))·고야천(高野川)이라고 했던 큰 하천이 흐르고 있고 비옥한 토지들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내랑(奈郞)시대부터 명치(明治)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지리 구분의 기본단위였던 국(國)으로 기내(畿内)에 있었던 5개국 중 하나였다. 646년 일본에서 조정(朝廷) 안의 혁신파가 벌인 대규모 정치 개혁인 대화개신(大化改新) 이후 하나의 국(國)이 되었다. 겸창(鎌倉)시대는 경도 지역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경도수호(京都守護)가 설치되었고, 실정(室町)시대에는 막부(幕府)가 열려서 시소소사(侍所所司)가 수호를 겸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도 산성주가 나오는데, 1461년(세조 7) 조선에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세조실록』 7년 12월 10일).

1871년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藩)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경도부와 정현(淀縣)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정현은 폐지되고 경도부의 남쪽 지역이 되었다. 옹주(雍州)·산주(山州)·성주(城州)·성(城)이라고도 하였다.

위치 비정

경도부 남쪽 지역이다.

참고문헌

  • 『일본서기(日本書紀)』
  •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