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종설(四種說)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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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사종설 |
한글표제 | 사종설 |
한자표제 | 四種說 |
상위어 | 예송(禮訟) |
관련어 | 의례(儀禮) |
분야 | 정치/정치운영/정쟁·정론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서울~전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영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사종설(四種說) |
『의례』 상복편 참최장의 가공언 소설에 나오는 것으로 비록 종통을 이은 자손이라도 아버지가 그의 상(喪)에 참최를 입지 않는다는 네 가지의 예외 규정.
개설
사종설은 중국 고례(古禮)의 하나인 『의례(儀禮)』 상복편(喪服篇) 참최장(斬衰章)에서 아버지가 장자를 위하여 참최를 입는다[父爲長子]는 조항의 본문을 풀어서 설명한 가공언(賈公彦)의 소설(疏說) 중 일부이다. 아버지는 종통을 이은 장자의 상에 3년복인 참최를 입지만, 비록 종통을 이었더라도 참최를 입지 않는 4가지의 예외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첫째, 아들이면서도 조상의 제사를 받들지 못한 경우[正體不得傳重]로서, 적장자로서 폐질(廢疾)이 있어 종묘(宗廟)를 주관하지 못한 자를 말한다. 둘째, 조상의 계통을 잇기는 하였으나 적통의 계승자인 정체(正體)가 아닌 경우[傳重非正體]로서, 서손으로서 대를 이은 자를 말한다. 셋째,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통이 아닌 경우[體而不正]로서, 서자로서 후사가 된 자를 말한다. 넷째, 정통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아닌 경우[正而不體]로서, 적손(嫡孫)을 세워 후사로 정한 자를 말한다[雖承重 不得三年有四種 一則正體不得傳重 謂嫡子有廢疾 不堪主宗廟也 二則傳重非正體 庶孫爲後是也 三則體而不正 立庶子爲後是也 四則正而不體 立嫡孫爲後是也]. 이 사종설의 해석은 1659년 효종(孝宗)의 국상에 모후인 자의대비(慈懿大妃)가 입을 상복을 두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서 일어났던 기해예송의 핵심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내용 및 특징
제1차 예송의 쟁점은 효종이 인조(仁祖)의 장자에 해당하는가 차자 이하의 아들인 중자(衆子)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 따라 자의대비의 상복도 결정될 것이었다. 송시열(宋時烈) 등의 서인들은 출생 순서를 따라 효종을 중자로 보았다. 그러나 허목(許穆)을 비롯한 남인은 효종이 인조의 정통을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장자라고 보았다. 『의례』 소설에 "제1자가 죽으면 적처 소생의 제2장자를 세우고 그를 또한 장자라고 부른다."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시열은 효종이 사종설의 셋째 경우인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통이 아닌 경우로서[體而不正], 서자로서 후사가 된 자"에 해당하여 3년복을 입지 못한다고 하였다. 서자를 ‘중자’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허목은 서자를 ‘첩자(妾子)’로 해석하여 효종이 서자가 아니므로 장자 3년복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예송에는 서인과 남인의 많은 학자와 관료들이 참여하였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정태화(鄭太和)는 이 예론의 위험성을 깨닫고 장자와 중자를 가리는 『의례』의 설을 버리고, 장자 중자 구분없이 기년복을 입게 한 『경국대전』의 조항에 의해 1년복인 기년복으로 확정하였다.
변천
제1차 예송에서 기년복이 채택되자 서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승리한 것으로 믿었고, 과격한 비판을 하였던 윤선도(尹善道) 등을 유배하고 예송에 참여한 남인들을 숙청하였다. 그러나 1674년에 효종의 왕비였던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으로 인해 제2차 예송이 일어났다. 『경국대전』에는 장자와 차자 구분 없이 기년복을 입게 되어 있었지만, 자부(子婦)에 대하여는 장자부는 기년, 중자부(衆子婦)는 9개월복인 대공(大功)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서인들은 대공을 주장하였지만, 남인 도신징(都愼徵) 등의 주장으로 현종은 기년설을 채택하고 서인들을 숙청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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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복제예송과 정국변동 –제이차예송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22 , 국사편찬위원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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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재, 「윤백호의 예론과 윤리사상」, 『현대사회와 윤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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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두환, 「조선후기 예송연구」, 『부대사학』11, 1987.
- 황원구, 「기해복제논안시말」, 『연세논총』 사회과학편 2,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