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현(比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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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비안현(比安縣)은 신라시대 아화옥현(阿火屋縣)과 아시혜현(阿尸兮縣)에서 기원한다. 아화옥현과 아시혜현은 신라 경덕왕 때 각각 비옥현(比屋縣)과 안현현(安賢縣)으로 개명되어 문소군(聞韶郡: 현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일대)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안현현은 안정현(安定縣)으로 개명하였으며, 비옥현과 안정현 모두 상주(尙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안정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고 비옥현을 겸임하였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에 감무는 현감(縣監)으로 개칭하였다. 1421년(세종 3)에는 두 고을을 통합하여 안비현(安比縣)으로 하였으나, 1423년(세종 5)에 비안현으로 다시 고쳤다. 1895년(고종 32)에는 비안군(比安郡)이 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비안군은 의성군(義城郡)에 병합되어 사라졌다. 비안현의 중심지는 현재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일대에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비안현은 신라의 아화옥현과 아시혜현 2개의 고을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아화옥현은 비옥현으로, 아시혜현은 안현현으로 개명하고, 신라 9주(九州) 중 상주(尙州)에 속했던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 비옥현은 그대로 불렸고, 안현현은 안정현으로 고쳤으며, 두 곳 모두 1018년(고려 현종 9)에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안정현에는 1390년부터 감무가 파견되었으며, 안정현 감무가 비옥현을 겸임하였다. 이때 사실상 두 고을은 통합된 것이다.

조선시대 1413년에 전국의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할 때 안정감무도 안정현감이 되었다. 1421년에 안정현은 안비현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1423년에 비안현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관아를 비옥현 지역으로 옮겼다(『세종실록』 5년 5월 26일).

조직 및 역할

비안현의 전신인 신라시대의 비옥현과 안현현은 문소군의 영현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안현현은 안정현으로 개명하였다. 비옥현과 안정현은 모두 상주에 소속된 속현이었다. 두 고을에는 중앙에서 별도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상주에 파견된 지방관이 두 고을을 관할하였다. 대신 두 고을에는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두 고을은 비안현으로 통합되었는데,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비안현의 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비안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비안에는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44명, 지인(知印) 31명, 사령(使令) 12명, 관노(官奴) 31명, 관비(官婢) 31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비안현은 1423년에 비옥현 지역에 읍치를 정한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비안군으로 변동되어 대구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비안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비안군은 의성군에 병합되었다. 비안군의 관아가 있던 지역은 현재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으로 편성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