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정심다라니경언해(佛頂心陀羅尼經諺解)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485년(성종 16) 승려 학조(學祖)가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을 받아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불정심료병구산법(佛頂心療病救産法)』·『불정심구난신험경(佛頂心救難神驗經)』을 언해한 책.

개설

『불정심다라니경언해(佛頂心陀羅尼經諺解)』는 인수대비가 성종(成宗)을 위하여 승려 학조를 시켜 간행한 책으로, 『법화경(法華經)』 가운데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만을 분리하여 한 경으로 만든 후 이를 언해한 책이다.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된 마지막 문헌이다. 또한 그림이 실려 있어, 국어사의 연구뿐 아니라 전통 회화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정심경언해(佛頂心經諺解)』라고도 한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원간본은 한문본 끝에 학조의 발문(跋文)이 있다. 그 마지막 부분에 “成化二十一年乙巳者二月比丘佛學祖謹跋(성화이십일년을사자이월비구불학조근발)”이라고 서술되어 있어, 이 책이 1485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미상이지만, 인수대비의 명에 의하여 언해되고 인출되었다는 점과 학조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학조가 인수대비의 명을 받아 편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지 사항

총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30.5cm, 가로 18.5cm이다.

이 책은 15세기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 되었다. 인수대비를 중심으로 왕실에서 인간(印刊)을 주도했던 초간본과는 달리,(『성종실록』 15년 2월 26일) 불자들이 널리 독송·수지하면서 나중에는 지방의 사찰을 중심으로 유호의 범위를 넓혀 간 듯하다. 이러한 사찰판본들은 거의가 복각본들이며, 언해본뿐만 아니라 한문본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의 일부만을 음역한 책도 있다. 중간본으로는 ‘평안도 대청산 해탈암판’, ‘경북 상주 봉불암판’, ‘경남 동래 범어사판’이 대표적이다.

현재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앞부분에 목판본인 한문본이 위치하고, 뒤에 활자본인 언해본이 합철되어 있다. 대부분의 불경 언해서가 대문(大文)을 단위로 본문과 언해문을 짝짓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한문본의 각 면 위에는 글의 내용을 나타내는 그림 45면과 전화면(全畫面) 3면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한문본을 활자본으로 하지 않고, 목판본으로 한 것은 이 그림 때문이다. 원문과 언해문을 서로 분리해서 편찬했기 때문에 판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언해문에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이 각 한자 아래에 적혀 있는데, 이 책은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가진 최후의 문헌으로 추측된다.

『불정심다라니경』은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신앙에 의해 널리 유통된 경전이다. 다라니는 지혜와 삼매를 성취시켜 주는 힘을 지니고 있는 말씀으로 글자 하나마다 무한한 의미와 위력을 가지고 있다. 상권은 『불정심다라니경』, 중권은 『불정심요병구산법』, 하권은 『불정심구난신험경』으로, 각 권의 내용을 반영하여 권명이 서로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다.

상권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중생이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락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중권에서는 경전의 독자인 선남자, 선여인을 대상으로 임산부가 해산할 때 이 다라니를 외우면 무사히 출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심신의 병마를 극복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처방으로서 ‘다라니경’의 효험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예화를 통해 느낀 바가 큰 중생들에게 이 경전의 수지와 독송의 봉행을 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상권의 앞부분과 하권의 예화 부분은 석존과 관세음보살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고, 그 외에는 주로 설화자(說話者)가 『불정심다라니』의 수지(受持)와 독송을 권하는, 이른바 설득하는 내용으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다. 이 다라니경을 몸에 지니고 정성을 다해 읽으면 갖가지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설하는 내용으로 된 문장들이다.

이 책은 15세기 후반의 한국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로써, 소중한 국어사자료이자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교 문화의 한 면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또한 그림이 배치되어 있어 회화사 자료로도 활용된다.

이 책에는 15세기 후반의 언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ㅸ’이나 ‘ㆆ’이 쓰이지 않고, ‘ㅿ’이나 ‘ㆁ’이 쓰이지 않았으며, 유성자음 다음에서 분철한 예가 일부 있는가 하면, 각자병서 ‘ㅆ’, ‘ㅉ’이 쓰이기도 했다. 방점이 나오고, 사잇글자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용언 어간 ‘-’가 무성자음 ‘ㄱ’, ‘ㄷ’으로 시작되는 어미 ‘-거나’, ‘-거든’, ‘-고져’, ‘-더니’, ‘-게’, ‘-디’와 만날 경우, 대부분 격음화된 형태인 축약형으로 표기하였다. 또한 ‘ㅸ’을 쓰지 않고 모두 ‘오/우’로 바꾸었다. 동명사어미는 모두 ‘-ㄹ’로만 실현되어 ‘ㆆ’이 쓰이지 않았다. ‘ㅿ’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실현되었는데, 이는 8종성 표기에 충실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 책에서 ‘ㅿ’는 모두 모음 사이에서 쓰인다. 일부의 예이기는 하지만, 한자어를 한자로 적지 않고 정음(正音)으로 쓴 경우도 있다. 이는 한자어라는 인식이 이때 벌써 엷어졌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15세기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 잘 쓰이지 않던 어휘도 몇몇 보인다. 일부 어휘는 이 책 이후에 널리 쓰였는데, 예를 들면, ‘얼쿄’, ‘얌에라’, ‘우’, ‘긔’, ‘봄뇌요미’, ‘젼으로’,‘ 이고’ 등이 그것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김무봉, 「한국사상문화(韓國思想文化)-불정심다라니경언해 연구」, 『한국사상과 문화』한국사상문화학회, 2008.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 연구원, 1996.
  • 안병희, 「중세어(中世語)의 한글 자료(資料)에 대한 종합적(綜合的) 고찰(考察)」, 『규장각』 3, 서울대학교 도서관, 1979.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