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北商)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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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북상 |
한글표제 | 북상 |
한자표제 | 北商 |
관련어 | 북관개시(北關開市), 어물상(魚物商), 경상(京商), 송상(松商), 북어(北魚), 북포(北布), 육진(六鎭), 도고(都賈), 부상대고(富商大賈), 덕주(德主) |
분야 | 경제/산업/상업·무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이철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북상(北商) |
함경도 출신이거나 함경도를 근거로 전국적인 유통망 속에서 상업활동을 전개하던 상인.
개설
18세기 전반까지 함경도 지역의 상업 성장은 미미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함경도 지역의 특산물인 북어와 북포를 구매하고자 하는 전국의 상인들이 함경도 상업 거점지였던 원산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함경도 원산을 중심으로 상업 활동을 전개한 상인을 북상이라고 불렀다. 북상은 함경도 내 상권을 장악해 나가면서 도고(都賈)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여진족 즉 청나라와의 무역활동인 북관개시(北關開市)를 통해 국제무역에도 참여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함경도 상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인 18세기 중엽 이전에 이 지역의 교역은 특산물을 구하러 오는 경상(京商)이나 송상(松商)과 같은 다른 지역 상인들이 주도하였다. 함경도 백성들은 다른 지역의 상인을 상대로 생산물을 판매하고 일용품을 구입하였을 뿐 함경도 내 지역상인의 활동은 크지 않았다.
함경도 상인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특히 1740년대부터 이다. 이때부터 함경도의 상인을 지칭하는 북상(北商)이라는 용어가 자료에 자주 등장한다. 북상은 함경도 출신이거나 함경도를 근거로 전국적인 유통망 속에서 상업활동을 전개하던 상인을 지칭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함경도의 대표적인 산물인 북어(北魚), 북포(北布) 등을 서울 및 전국 장시에 판매하던 함경도 지역 상인을 북상이라 불렀다.
조직 및 역할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북상은 생산자가 판매자를 겸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소규모의 상업행위는 함경도에서도 존재했다. 특히 해안 읍의 어민들이 기초적인 상품의 생산자이자 유통의 담당자였다. 또 함경도 보부상이나 선상들은 생산지와 소비지를 왕래하며 상품을 매매하며 이익을 추구한 소매상이었다. 이들은 집산지에서 물품을 구매하여 전국적으로 활동하던 북상에게 넘겨주기도 하였다.
전국적 규모로 상업 활동을 전개하던 대표적인 북상은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어물상(魚物商)이었다. 원산은 함경도 각 지역에서 생산된 물화가 집산되는 교통 중심지로 전국에서 많은 상인과 상선 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따라 원산은 함경도 상업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이곳에 모인 어물을 전국 시장에 판매하고 곡물 등을 구입해 오는 원산 상인이 북상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육진(六鎭) 지역의 명품인 북포를 판매하는 상인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이들도 북상의 주요한 일원이 되었다.
변천
18세기 말 이후 함경도의 주요 물화 집산지에 특정상품의 유통을 독점하는 부상대고(富商大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상업 중심지에 근거를 두고 다량의 물화를 집적하여 전국의 장시를 대상으로 매매하는 상인이자, 관권과의 유착을 통해 성장한 상인들이었다.
북상의 도고 활동은 주로 국가 수요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대동법 실시 이후 대부분의 국가 수요품은 공인을 통해 조달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직접 상납해야 하는 진상 물종이 남아 있었다. 북상들은 진상품 납부에 관여하여 독점적 이윤을 꾀하고 있었다. 한편 함경도 남부에서는 최대 교역품이던 미곡 유통을 독점하던 도고 상인들도 있었다.
또한 각 포구에는 포구 주인이 상업을 장악했다. 원산 포구의 포구 주인은 선상이나 어민들이 실어온 북어를 사들여 전국의 해로를 통해 판매하였다. 이들은 함경도의 선상뿐 아니라 전국에서 북어를 사러오는 상인을 상대로 북어 유통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외에도 함경도 지역의 북어 선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던 덕주(德主)가 있었다. 덕주는 북어의 위탁판매를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인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북상들은 북관개시에도 참여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개시정례가 정비되어 북관개시가 실질적인 국제교역의 장이 된 이후에는 본격적인 무역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사교역이 번성함에 따라 육진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북관개시에서 청의 사상들과 교역하던 전문 무역상을 시상(市商)이라고 불렀다.
참고문헌
- 고승희, 『조선후기 함경도 상업 연구』, 국학자료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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