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부(富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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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경기도의 부평부를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부평부(富平府)는 고려 성종 때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 때 폐지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주사(知州事), 1150년(고려 의종 4)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1215년(고려 고종 2)에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부평으로 이름을 고치고 다시 부(府)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의 개편으로 인천부 부평군이 되었다.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부평부는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이름을 부평으로 고치고 부가 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394년(태조 3)에 경기도를 좌·우도로 나눌 때 경기우도에 소속되었고,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구역의 명칭을 개정할 때 도호부로 바뀌었다. 1438년(세종 20)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446년(세종 28)에 복구되었고, 1505년(연산군 11)에도 부가 폐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되었다. 1698년(숙종 24)에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07년(숙종 33)에 다시 승격되었다.

조직 및 역할

『경국대전』에 따르면 부평부에는 종3품의 부사(府使)와 종6품의 교수(敎授) 각 1명이 있었다. 교수는 지방 향교 교생을 지도하기 위해 부와 목에 두었으나, 무록관(無祿官)이기 때문에 가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방에서 자치규약인 향약 등이 활발하게 운영됨으로써 조선후기에는 모두 폐지되었다. 조선후기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종3품 부사 1명과 좌수 1명, 별감 2명, 아전 19명이 부평부에 소속되었다. 좌수와 별감의 임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6방을 분장해서 좌수가 이·병방을, 좌별감이 호·예방을, 우별감이 형·공방을 맡아 유수의 자문에 응하고 풍기를 단속하며 향리를 규찰하는 등 수령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지방 양반 중에서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자를 추대하여 우두머리를 좌수, 차석을 별감이라 하여 수령이 임명하였다. 임기는 대개 2년이었다. 군관은 군사적인 실무를 담당하였고, 아전은 지방 관청의 하급 행정실무자로 이·호·예·병·형·공의 6방 등이다.

변천

부평부는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君)인데, 신라시대에 장제(長堤)라고 고쳐졌고, 고려 초에 수주(樹州)로 바뀌었다. 고려 성종 때 단련사를 두었다가 목종 때 폐지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주사라 개칭되고, 1150년(고려 의종 4)에 안남도호부, 1215년(고려 고종 2)에 계양도호부로 개칭되었다.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길주목으로 승격시켰으며,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여러 목을 없앨 때 부평으로 이름을 고치고 부로 강등시켰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구역의 명칭을 개정할 때 도호부로 바뀌었다. 세종 초에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는 강화도호부·인천군·해풍군·김포현·교동현·양천현·통진현 등 1도호부, 2군, 4현을 관할하였다. 1438년(세종 20)에 세종이 부평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여러 번 조관(朝官)을 보내어 찾아보았으나, 아전과 백성이 숨기고 말하지 않아서 현으로 강등하였다가(『세종실록』 20년 11월 8일), 1446년(세종 28)에 복구하였다(『세종실록』 28년 11월 10일). 1505년(연산군 11)에는 부평 출신 내시 김순손(金舜孫)의 고향이라 하여 부를 폐지하였다가(『연산군일기』 11년 8월 24일), 1506년(중종 1)에 복구하였다. 1685년(숙종 11)에 군영을 설치하고 진무영(鎭撫營)의 전영장(前營將)을 겸하게 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장릉(章陵)에 방화(放火)한 최필성(崔弼成)·안사현(安士賢) 등 죄인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뒤인 1707년(숙종 33)에 다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인천부 부평군이 되었다.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순종 7) 행정구역개편 때 부천군(富川郡)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경기(京畿)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
  • 『여지도서(輿地圖書)』경기도(京畿道) 부평(富平)
  • 차문섭, 「중앙집권적 정치구조」, 『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