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잡의(奉先雜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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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주자의 『가례(家禮)』 및 기타 예설(禮說)과 우리나라의 속례(俗禮)를 참작하여, 제사의식과 절차 등을 서술한 예서다.

개설

이 책은 회재(晦齋) 이언적의 저작으로 제례(祭禮)에 관한 책으로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중심으로 여러 학자들의 예설을 모아, 당시 실정에 맞도록 편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 풍속에 가례를 어떻게 적용시켜나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서로서, 최초의 구체적인 성과물이다. 주자가 『가례』를 찬술하면서, 송대의 습속을 많이 참조한 것처럼 저자 또한 주자의 가례를 기본으로 삼아, 16세기 중반 조선의 풍속과 제도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3대 봉사를 기술하고 있다든가, 꿇어앉는 자세를 기록한 것이나, 고비 합설을 설명하고, 명절의 묘제를 설명한 것 등에서 국제(國制)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선 『주자가례』 및 사마 광(司馬光)·정이(程頤) 등의 제례서(祭禮書)에서 취사선택하여, 일가(一家)의 예법을 작성하고, 예경(禮經)과 선현들의 글에서 보본추원(報本追遠)의 뜻이 담긴 대목을 추려서 따로 하편 l권을 만들었다. 1550년(명종 5)에 쓴 저자의 서(書)가 있고, 1643년(인조 21)에 쓴 송국택(宋國澤)의 간기(刊記)가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저자 이언적은 성리학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던 16세기 전반기에 성리학의 이론정립과 유교의례의 보급에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서, 철학은 이(理)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주리적(主理的)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주경(主敬)’에 입각한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수양론을 제시하여, 현상계에서의 실리 추구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주자가례』가 조선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례’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성과물이다. 또한 제례를 시행하는 절차와 의미에 관하여 서술해 놓은 제례지침서로서, 이는 단순히 제례의 행위절차에 그치지 않고, 제례의 이론과 실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에서 이언적이 유교의례의 토착화 과정에서 단순히 의례의 형식만을 답습하지 않고, 예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주자가례』를 조선사회에 시행하면서, 이를 당시의 시속(時俗)이나 국제(國制)와 조화시켜 적용함으로써 예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언적의 예학사상은 예의 본질에 입각한 합리성을 추구하였다고 하겠다. 이처럼 이언적의 예학사상은, 조선전기에 『주자가례』가 우리의 고유한 시속과 절충하고 조화하며 토착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유교의례의 토착화에 대한 노력을 기반으로 조선사회의 예치주의(禮治主義)가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지 사항

2권 1책(2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2.5×16.6cm이다. 10행 19자의 유계, 상하흑어미(上下黑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0.1×20.3cm이며, 규장각,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상권에는 사당(祠堂)에 선대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고, 천신(薦新), 시제(時祭), 기제(忌祭), 묘제(墓祭)를 지내는 절차를 말하였고, 하권에는 제례에 대한 선유(先儒)의 유훈(遺訓)과 이론을 취록하였다. 이언적은 이조 판서, 우찬성 등을 지낸 대유로 틈틈이 성리학에 몰두하여, 한 조종(祖宗)을 이루었다. 그의 예설은 특히 후인의 귀감이 되었다.

이 책은 편자가 『주자가례』에 근거하여, 사마광·정이의 제례서에서 취사·손익하여, 당시의 시속에 맞도록 편집하였으며, 가정의례의 준칙이 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풍속에 『가례』를 어떻게 적용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 예의 본질과 실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 예서(禮書) 형태를 갖춘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봉선잡의(奉先雜儀)』와 『가례』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편자가 『가례』를 따르지 않고, 국제(國制)를 따른 것은 대표적으로 3대 봉사를 들 수 있다.

둘째, 우리나라는 꿇어앉거나 엎드리는 것을 경건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봉선잡의』에서는 『가례』와 달리 사당에 고할 때 주인이나 축이나 모두 꿇어앉는다.

셋째, 『봉선잡의』에서는 고사나 축사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칭하는 말이 다르다.

넷째, 『가례』에서는 기제사에 단설하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이언적은 고비를 합설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섯째, 『가례』에는 3월 상순에 묘제를 한 번 지낸다고 했지만, 이언적은 시속대로 명절마다 묘제를 지내도 좋다고 했다.

여섯째, 후토제를 지낼 때, 『봉선잡의』와 『가례』에는 제수 음식의 규모가 다른데, 이언적은 찬품을 줄여서 기술하였다.

의의와 평가

예는 본질과 형식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될 만큼 둘 다 중요하지만, 형식이 조금 바뀌더라도 본질에 합당하다면 이를 따르는 것이 옳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습속이 예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우리의 생활과 문화, 규모에 합당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추구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김순미, 「晦齋 李彦迪의 『奉先雜儀』 연구」, 『민족문화』 제43집, 민족문화추진회, 2014.
  • 도민재, 「晦齋 李彦迪의 예학사상 연구-『奉先雜儀』를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제35집, 동양철학연구회, 2003.
  • 민덕식, 「李彦迪의 『奉先雜儀』 手筆本에 대하여」, 『사학연구』 제55·56호, 한국사학회, 1998.
  • 손승호, 『晦齋 李彦迪의 哲學思想 硏究』, 대구한의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 이문주, 「『주자가례』의 조선 시행과정과 가례주석서에 대한 연구」, 『유교문화연구』 제16집,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