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현(保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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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보령현(保寧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현이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설치되었다. 15세기에 호수가 365호, 인구가 1,213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12명, 진군(鎭軍) 100명이었다. 토지는 3,017결인데, 논이 2/5로 좀 모자랐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보령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보령현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신촌현(新村縣)이었다. 사촌현(沙村縣)이라고도 불렸다. 당나라가 산곤(散昆)으로 고치고 웅진도호부(熊津都督府)의 속현으로 삼았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읍현(新邑縣)으로 고쳐 결성군(潔城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금의 홍주 지역인 운주(運州)의 임내로 두었다. 1106년(고려 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주로 문과 출신 수령을 파견하였다. 『여지도서』의 18세기 통계를 보면 관아에 좌수 1명, 별감 1명, 감관 1명, 군관 10명, 아전 10명, 지인 7명, 사령 8명, 관노 9명, 관비 8명이 있었다. 보령은 군사 요충지로 충청수영(忠淸水營)이 현 서쪽 20리에 있었다. 절도사(節度使)와 우후(虞候)는 각 1명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오면서 군사적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였다.

변천

1652년(효종 3)에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수군절도사겸부사(水軍節度使兼府使)라 하였다. 그러나 1655년(효종 6)에 다시 보령현으로 강등하였다. 조선후기에는 8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8개 면 편호 4,097호, 인구 17,518명으로 남자 7,489명, 여자 10,029명이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에 의하면 토지는 밭 910결 41부 2속, 논 972결 92부 5속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보령부에서 홍주부 소속의 보령군이 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보령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