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역(凡於驛)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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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범어역 |
한글표제 | 범어역 |
한자표제 | 凡於驛 |
상위어 | 성현도(省峴道) |
관련어 | 경주도(慶州道),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수성군(壽城郡), 역도(驛道), 역로(驛路), 김천도(金泉道) |
분야 | 경제/교통/육운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구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896년(고종 33) 1월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범어역(凡於驛)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8년 8월 5일 |
조선시대 경상도 대구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범어역(凡於驛)은 대구도호부 동쪽 9리(약 3.5㎞)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수성군(壽城郡)에 위치하였으며, 경주도(慶州道) 소속의 역(驛)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성현도(省峴道)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조선전기 범어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김천도(金泉道) 소속으로 편제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이후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 범어역은 성현도 소속으로 편성되었고(『세조실록』 8년 8월 5일),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그대로 성현도 소속으로 유지되어, 조선후기까지 소속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범어역이 대구가 아닌 수성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수성은 조선초기에 대구에 병합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범어역에는 대마(大馬) 1마리, 중마(中馬) 2마리, 복마(卜馬) 1마리와, 역리(驛吏) 215명, 역노(驛奴) 84명, 역비(驛婢) 223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범어역은 서쪽의 성주·대구 방면과 동쪽과 남쪽의 경산·경주·청도 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범어역에서 서쪽으로는 대구 금천역(琴川驛), 북쪽으로는 칠곡 고평역(高平驛), 동쪽으로는 경산 압량역(押梁驛), 남쪽으로는 청도 성현역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범어역도 폐지되었다.
범어역의 위치는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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