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소학(飜譯小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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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중종 13) 김전(金詮), 최숙생(崔淑生) 등이 『소학(小學)』을 번역한 책.

개설

『번역소학(飜譯小學)』은 송(宋)나라 유자징(劉子澄)이 편찬한 『소학』을 번역한 책이다. 김전과 최숙생(崔淑生) 등이 언해하였으며, 1518년(중종 13)에 간행하였다. 『소학집성(小學集成)』을 저본(底本)으로 하였기 때문에 권수가 10권이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의역을 하였다는 점이다. 15세기에 불경(佛經)을 언해하는 과정에서 직역(直譯)의 전통이 생겼는데, 이 책은 이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매우 대담한 시도로 우리나라의 번역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본문의 글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표현을 살리려고 하였고, 본문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서는 주(注)의 내용을 거리낌 없이 끌어넣었다. 이것은 오로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518년(중종 13) 7월에 1,300질이 간행되어, 조관(朝官)과 종친들에게 배포되었다.(『중종실록』 13년 7월 2일) 이렇듯 널리 배포한 이유는 남곤(南袞)의 발문(跋文)에 잘 드러나는데, 광인유포(廣印流布)하여 아동부녀(兒童婦女)에게까지 그 내용을 널리 깨닫게 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고 되어 있다. 널리 『소학』을 배포하여 교화를 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중종실록』 14년 4월 24일) 이후 선조(宣祖) 대에도 『번역소학』을 널리 퍼뜨려 풍속을 교화하고자 하였다.(『선조실록』 6년 11월 4일)

서지 사항

10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찬집청에서 간행하였다. 책의 크기는 세로 30.8㎝, 가로 20㎝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중간본만이 전하는데 그나마 영본(零本 : 낙질이 많은 책)이다. 이들은 ‘을해자본’을 복각한 목판본으로, 원간본이 ‘을해자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정청(校正廳)에서 『소학언해(小學諺解)』를 1587년(선조 20)에 간행하기 이전에 간행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실한 것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권6·7·9,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권9, 국립중앙도서관에 권10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이 의역을 선택한 것은 널리 읽게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이며, 복각본까지 나온 것을 볼 때 상당한 환영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직역의 전통이 이미 수립된 상황에서 이 책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선조 때에 교정청에서 직역체의 『소학언해(小學諺解)』를 간행하였고, 그 첫머리 「범례(凡例)」에는 『번역소학』의 의역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번역소학』는 16세기 초 국어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언해 작업이 이루어기 시작한 후 비교적 빠른 시기인 1518년(중종 13)에 첫 번역이 이루어진 덕에 16세기 초기 국어 모습을 잘 알려주고 있다. 또한 유교 경전 가운데서는 가장 처음으로 완전하게 한글로 번역되었다는 점도 의의가 있다. 이 책은 불경 언해에서 비롯된 직역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내용을 의역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했고,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주의 내용을 과감히 넣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널리 읽도록 한다는 간행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한글 번역사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 또한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한글창제 이후 1,500년 이전까지 번역 사업이 주로 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불교쪽에 치중된 것과는 달리 유교 경전은 소학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특히 『번역소학』은 이전에 이뤄진 불경번역이 원문에 충실한 직역중심이었던 것과는 달리 아동이나 부녀자, 여항인을 대상으로 한 『소학』을 쉽게 풀어써서 번역을 했다는 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있다.

본래 『소학』은 8세 안팎의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책으로, 송(宋)나라 주희(朱熹)가 엮은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은 그의 제자 유자징이 주자의 지시에 따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이다. 「내편(內篇)」은 입교(入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로, 「외편(外篇)」은 가언(嘉言)·선행(善行)으로 되어 있다. 입교는 교육하는 법을 말하는 것이고, 명륜은 오륜을 밝힌 것이며, 경신은 몸을 공경히 닦는 것이고, 계고는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하여 입교·명륜·경신을 설명한 것이다. 가언은 옛 성현들의 좋은 교훈을 인용하고, 선행은 선인들의 착한 행실을 모아 입교·명륜·경신을 널리 인용하고 있다. 즉, 쇄소(灑掃)·응대(應對)·진퇴(進退) 등 어린아이의 처신하는 절차부터 인간의 기본 도리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편 현존하는 『번역소학』은 복각본으로 ‘나가’(나가), ‘옯니라’(옮니라) ‘’() ‘슬윗’(술윗), ‘밀며’(말며) 등 오각과 탈각이 존재하나, 16세기 초의 국어 문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문법적으로 발견되는 모습과 새로운 단어의 형태에 대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문법적 측면에서 ‘ㅿ’은 쓰이고 있기는 하나 부분적으로 ‘ㅇ’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리고 ‘ㆁ’은 ‘-다’를 제외하고는 종성으로만 쓰인다. 초성의 병서로는 ‘ㅺ, ㅼ, ㅽ, ㅳ, ㅶ, ㅄ, ㅴ’ 등이 나타나고, 각자병서 ‘ㄲ, ㄸ, ㅃ, ㅉ, ㆅ’ 등은 보이지 않으나 ‘ㅆ’은 권3와 권4권를 제외한 다른 권수에서는 나타난다. ‘존 거시니’, ‘존논 도리 잇니’, ‘니디’, ‘니며’ 등처럼 자음동화가 반영되어 있고, ‘얼우신늬’, 옷기슭기’ ‘긋’ ‘앏셔’, ‘처’ 등처럼 중철이 표기되어있다. ‘겨시-’ 외에 ‘계시거든’, ‘너겨’ 외에 ‘녀교’, ‘겨집’과 ‘계집’ 등과 같이 두 가지 어휘가 쓰였고, ‘忠로’, ‘參예야’, ‘閑가샤, ‘行뎍’, ‘妻子식’ 등처럼 두 자 이상으로 구성된 한자어 중 일부는 한자로 표기하고 나머지 한 글자는 한글 표기로 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어의 측면 에서는 ‘삽지지멧말’, ‘잇들-’, ‘헏틀오-’, ‘전즈리-’, ‘퍼뎌 -’, ‘골오-’, ‘느즈웨’, ‘더더러’, ‘샹위’, ‘고져’(閽, 閽寺), ‘거’(容), ‘신용’(容), ‘애갓’, ‘아랫태우’, ‘웃태우’, ‘훗겨집’, ‘훗어미’ 등과 ‘여믜’(염소를 뜻하는 ‘염’), ‘깁것’, ‘등엣’, ‘하엣’, ‘호젹’, ‘됴’ 등의 예가 쓰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나찬연, 『중세 국어 문법의 이해』, 교학연구사, 2010.
  • 안병희, 「중세 한글 자료에 대한 종합적 고찰」, 『규장각』 3, 서울대학교, 1979.
  • 이기문, 「소학언해에 대하여」, 『한글』 127, 한글학회, 1960.
  • 이숭녕, 「소학언해의 무인본과 교정청본의 비교연구」, 『진단학보』 36, 진단학회, 1973.
  • 정호완, 『역주 번역소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1.
  • 홍윤표, 『번역소학 해제』, 홍문각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