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관일(白虹貫日)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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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백홍관일 |
한글표제 | 백홍관일 |
한자표제 | 白虹貫日 |
상위어 | 성변(星變) |
관련어 | 백홍관월(白虹貫月)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자연(현상)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백홍관일(白虹貫日)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14년 11월 29일, 『선조실록』 6년 1월 19일, 『숙종실록』 1년 1월 16일 |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듯 걸리는 현상.
개설
백홍관일(白虹貫日)은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듯 걸리거나 태양의 양쪽으로 흰 운기가 나타나 마치 태양을 꿴 듯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서운관지(書雲觀志)』에 따르면, 먼저 일훈(日暈)과 일이(日珥)를 이루고 밖에 홍기(虹氣)가 있어 길게 이어서 해를 꿰뚫은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현상을 변혁이 발생하기 전에 하늘이 내보이는 길흉의 징조로 해석하였다. 실제로는 대기 광학 현상의 일종이며, 공기 중 물방울 입자에 의해 태양 광선이 반사되거나 굴절되어 일곱 빛깔의 원호를 나타내는 자연 현상이다.
내용 및 특징
고대에는 무지개에 암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쪽의 테는 수컷 무지개[虹], 바깥 테는 암컷 무지개[霓]라는 것이다. 또는 안이 자색이고 바깥이 홍색[內紫外紅]일 때 정상적인 무지개이고, 반대로 안이 홍색이고 바깥이 자색[內紅外紫]인 것은 색채가 비교적 옅어 보이는데 이를 암컷 무지개[霓]라 하기도 하였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운기(雲氣)’조(條)에서는 홍예(虹霓)를 태양 곁에서 태양빛을 가리는 요사스런 기운[妖氣]으로 취급하였다. 마치 태양 옆에서 서로 총애를 다투는 모습 같다고 하여, 신하가 왕을 모략하는 혹심(惑心)이나 후비(后妃)를 쫓아내는 내음(內淫)의 흉조로 해석하고 있다. 『천문류초(天文類抄)』는 흰 무지개[白虹]가 백 가지 재앙의 근본이고, 모든 분란을 일으키는 기틀이라고 보았다. 안개와 마찬가지로 음이 양을 가리는 현상이므로 간신이 왕을 모략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징조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무지개나 흰 무지개는 흉조로 보았다. 전라도에 발생한 일변(日變)에 대해, 영의정정광필(鄭光弼)은 이번 일변은 무지개가 태양을 범한 것으로 모두 흉상으로 여기는 것이며, 반란이나 위망(危亡)의 조짐으로 사(邪)가 정(正)을 해치고 첩이 지아비를 능멸하고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응험이 있을까 염려되니 근래 조정의 폐습을 바로잡기를 말하였다. 백홍관일 현상이 최근 신하의 모란(謀亂)으로 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부제학 이사균(李思鈞)은, 흰 무지개[白虹]는 음기(陰氣)인데 감히 태양을 범하여 겨울철에 나타났으니 큰 변고가 된다고 말하였다. 또한 마침 조광조(趙光祖) 등을 죄준 날에 나타났다 하면서, 조광조 등이 경학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지게 하고자 하였고 그 마음은 나라의 일을 위하였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8명을 귀양 보내었으니 하늘이 꾸짖은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어서 왕은 일반 백성과 달라서 일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천상(天象)을 움직일 수 있으니, 중론을 널리 거두어 온화하고 화평한 성심(聖心)을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것은 약 열흘 전인 11월 15일 발생한 기묘사화로 대사헌조광조 일당이 숙청되고, 1달 뒤에는 사사되는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개진된 발언이다. 신하가 왕을 핍박하는 백홍관일의 재변이 바로 이 조광조의 분란을 예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중종실록』 14년 11월 29일).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백홍관일 현상은 전통시대에 특히나 왕의 직접적인 재난으로 인식하였다. 왕인 태양을 어둡게 하고 가리는 재변으로 인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식이 여럿 보인다. 백홍관일을 줄여서 홍관(虹貫)이라 쓰기도 하였다.
선조 때에는 백홍관일이 발생하자, 왕은 큰 재변으로 여기고 피전감선(避殿減膳)하였다(『선조실록』 6년 1월 19일). 여기서 피전은 재변을 당하여 자신의 부덕을 반성하고 과실을 성찰하는 의미에서 왕이 정전에 나가지 않고 별전에서 정무를 보는 일종의 재변 의례이다. 감선은 마찬가지 의미에서 반찬의 수를 줄여 하늘에 근신하는 태도를 보이는 의식이다.
숙종 때에는 사학(四學)의 유생 박태두(朴泰斗) 등이 송시열(宋時烈)을 벌준 것에 대하여 변론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에서는 그 당시 일어났던 백홍관일의 재변이 정월에 나타난 것을 성왕과 주공의 이야기에 빗대 해석하였다. 간신의 말을 듣고 주공을 벌준 성왕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공을 다시 신임하였는데, 하늘이 왕에게 경고하여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백홍관일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숙종실록』 1년 1월 16일).
참고문헌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
-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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