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관(陪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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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실 자녀의 태(胎)를 묻기 위해 지방으로 파견한 관상감의 관원.

개설

주로 관상감에 소속된 관원 가운데 지리학교수가 맡아보았으며, 전향관과 주시관을 겸하기도 하였다. 배태관은 태를 모시고 지방으로 내려가 태실 조성을 완료할 때까지 안태사를 도와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태를 보관할 장소를 선정하고 태실을 만들어 안장하였는데, 이를 안태(安胎)라고 한다. 배태관은 안태사와 더불어 왕실에서 태실을 조성하기 위해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한 관원으로, 관상감 소속 실무자였다. 궁궐에서 태를 모시고 출발하여 무사히 안장할 때까지 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향관과 주시관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안태등록』에는 배태관 겸 주시관, 배태관 겸 전향관 또는 배태관 겸 전향주시관 등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정조는 태를 묻는 절차를 간소화하여 백성에게 주는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관원을 줄이면서 배태관이 전향관이나 주시관의 역할을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변천

『조선왕조실록』에는 태를 안치하는 일의 총책임자인 안태사를 선정하여 파견한 기록이 조선시대 전기부터 보인다[『태종실록』1년 9월 24일]. 그에 비해 담당 실무자인 배태관에 관한 기록은 정조 대에 태실 조성을 도왔던 지방관들과 배태관조헌택(趙憲澤)이 포상 대상에 포함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정조실록』 14년 8월 17일).

조선시대 전기에는 태실 조성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 태실도감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안태사와 함께 배태관, 전향관, 주시관 등 태실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담당실무자들을 따로 임명한 다음 지방으로 파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 조선시대 후기에는 지방 백성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원의 수를 줄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배태관이 전향관이나 주시관의 역할을 함께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안태등록(安胎謄錄)』, 민속원, 2007.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실의 안태와 태실관련의궤』, 민속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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