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정(盤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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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반송지(盤松池)인 서지(西池) 가에 지어진 연회를 개최하던 정자.

개설

반송정(盤松亭)은 외국 사절로 드나드는 관리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주거나 기로회(耆老會)를 베풀어 주던 곳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 밖에 사신을 영접하거나 사장(射場)을 행하기도 했다. 정자 주변에 반송(盤松)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위치 및 용도

반송정은 돈의문 밖 서북쪽에 위치하였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천동에 속한다. 조선초기에는 왕의 활쏘기 연습과 사냥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강무, 진법(陣法)과 진도(陣圖) 연습, 무과 시험을 치르던 곳이었다(『태종실록』 4년 4월 22일)(『세종실록』 3년 5월 8일). 한편 중국 사신을 영접하고 상춘연(賞春宴)을 베풀거나 경연관(經筵官) 연회를 개회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20년 3월 3일)(『중종실록』 9년 3월 3일).

변천 및 현황

반송정은 반석같이 큰 소나무를 정자로 표현한 것으로 모화관(慕華館) 북쪽에 있었다. 서지 주위에는 반송이 식재되었는데, 반송의 수형(樹形)이 수십 보를 덮고 그늘을 만들 정도로 컸다. 어느 날 왕이 여기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고, 이후 반송정이라 칭하였다. 반송정에서 유래하여 조선초기부터 이 일대를 서부 반송방(盤松坊)이라 일컬었다. 반송정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395년(태조 4)에 궁궐과 종묘의 완공에 힘입어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기 위해 개성으로부터 옮겨왔다. 이때 태조와 문무백관이 직접 반송정에 나가 맞아들였다.

반송정은 도성 서쪽문 밖에 위치하여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을 이곳에서 전송하거나 귀한 손님을 맞이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경도십영(京都十詠)의 하나인 「반송송객(盤松送客)」이란 시가 전해진다.

참고문헌

  • 『견한잡록(遣閑雜錄)』
  • 공준원, 『오궁과 도성』, 세계문예,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