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朴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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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53년(단종 1) = ?]. 조선 전기 문종(文宗)~단종(端宗) 때의 문신. 선공감(繕工監)주부(主簿)와 고양현감(高陽縣監) 등을 지냈다.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친분이 두터웠던 탓에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위리안치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문종~ 단종 시대 활동

박하(朴夏)는 안평대군을 알게 되면서 중추원(中樞院)녹사(錄事)에 속했다가, 얼마 후인 1451년(문종 1) 선공감 주부가 되었다.[『단종실록(端宗實錄)』단종 1년 10월 17일] 그 뒤 감찰(監察)을 역임하다가, 1452년(단종 즉위년) 9월경 고양현감이 되었다.[『문종실록(文宗實錄)』문종 1년 10월 12일, 문종 1년 10월 15일] 1452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안평대군과 김종서(金宗瑞) 등이 역모를 꾸미려고 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이때 박하는 안평대군과 가깝다는 이유로 변방에 위리안치되었다가, 그 해 11월 28일 죽음을 당하였다.[『단종실록』단종 즉위년 10월 13일, 단종 즉위년 11월 28일]

그는 본래 재능이 없고 다만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성질이 호방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열(列)에 넣어주지 않았고, 가깝게 지내던 안평대군 또한 그를 낮추어 보았으므로 나이 늙도록 벼슬살이가 순조롭지 않았다.[『문종실록』문종 1년 10월 17일, 『단종실록』단종 즉위년 9월 19일]

참고문헌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