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양(朴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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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 태조~세종 때 활동한 무신. 행직(行職)은 경상도병마사(慶尙道兵馬使)이다. 호는 금은(琴隱)이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는 박윤후(朴允厚)이다. 문충공(文忠公)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태조~세종 시대 활동

그는 고려가 망하자 문소현(聞韶縣: 현 경상북도 의성) 봉두산(鳳頭山)에 은거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를 ‘28은(隱)’의 한 사람이라 하였다.

태조가 일찍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남쪽지방에 왜구(倭寇)가 쳐들어 왔을 때 조정에서 그를 원수(元帥)로 천거하자 배명(拜命)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뒤 보덕(輔德)·좌장사(左長史)·우장사(右長史) 등에 임명되었다. 태종이 즉위한 이후 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함경도북영병마사(咸鏡道北營兵馬使)를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 12월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가 되었고, 1419년(세종 1) 왜구들이 다시 출몰하자 우군절제사(右軍節制使)가 되어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였다. 동정(東征)하였던 그들이 그 해 8월 초 돌아오니, 상왕 태종은 병조 참의(參議)장윤화(張允和)를 보내고, 세종은 우부대언(右副代言)최사강(崔士康)을 보내어 한강 가에서 영접하였다. 또 태종과 세종은 낙천정(樂天亭)에서 주연(酒宴)을 베풀어 그의 노고를 위로해 주었다. 1421년(세종 3) 6월 경상도병마절제사(慶尙道兵馬節制使)가 되었고, 동지총제(同知摠制)가 되었으며,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이조 참판(參判)과 도총부(都摠府) 부총관(副摠管) 등을 지냈다. 저서로 『금은실기(琴隱實紀)』가 있다.

시호와 배향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충청도 서천(舒川)의 명곡서원(明谷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는 권우(權祐)의 딸이고, 아들은 박충무(朴冲武)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성호사설(星湖僿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