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부(密陽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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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밀양부 |
한글표제 | 밀양부 |
한자표제 | 密陽府 |
관련어 | 추화(推火), 밀성(密城), 밀주(密州), 귀화(歸化), 응천(凝川), 밀산(密山)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신라~조선 |
왕대 | 신라~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밀양부(密陽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17년 2월 3일 |
신라시대의 추화군에서 기원하여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밀양부(密陽府)는 신라시대의 추화군(推火郡)에서 기원하였으며, 신라 경덕왕 때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어 5곳의 영현(領縣)을 거느렸다. 고려시대에는 밀성군으로 지군사(知郡事)를 두었으며, 6곳의 속군현(屬郡縣)을 거느렸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처음 밀양부로 승격한 이래 몇 차례 변화가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로 읍격을 유지하였다. 밀양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는 종3품의 관직으로 편성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밀양군(密陽郡)으로 조정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밀양부는 신라의 추화군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밀성군으로 개칭하였으며, 신라 9주(九州) 중 양주(良州)에 편성되어 5곳의 영현을 거느렸다. 고려시대에도 밀성군이라고 부르다가 995년(고려 성종 14)에 밀주자사(密州刺史)로 삼았으나, 1018년(고려 현종 9)에 다시 밀성군이라 하고 지군사를 두었으며, 6곳의 속군현을 거느리도록 하였다. 한때 귀화부곡(歸化部曲), 밀성현(密城縣) 등으로 변동된 적이 있었으나 1390년에 밀양부가 되었다.
조선시대 1392년(태조 1)에 밀양군이 되었다가 1394년(태조 3)에 밀양부로 환원되었고, 1400년(태종 1)에 다시 밀성군이 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 조선전기 밀양부에는 수산현(守山縣)과 풍각현(豐角縣) 2곳의 속현(屬縣)이 있었으나, 두 속현은 이후 밀양부 소속의 면으로 편제되었다.
조직 및 역할
신라시대에 밀성군에는 군태수(郡太守)가 파견되었으며, 밀성군은 상약현(尙藥縣)·밀진현(密津縣)·오구산현(烏丘山縣)·형산현(荊山縣)·소산현(蘇山縣) 5곳의 영현을 거느렸다. 고려시대에 밀성군에는 지밀성군사가 파견되었다. 지밀성군사는 밀성군의 영역 외에 2곳의 속군(屬郡)과 4곳의 속현도 함께 관할하였다. 또한 중앙에서 파견된 지군사와 별도로 밀성군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밀양도호부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밀양부에는 종3품의 도호부사와 종6품의 교수(敎授)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밀양에는 3품의 문관(文官)이나 음관(蔭官)이 부사로 임명되었으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150명, 인리(人吏) 46명, 지인(知印) 35명, 사령(使令) 23명, 관노(官奴) 41명, 관비(官婢) 44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3품의 도호부사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밀양부의 면(面) 편제에 관해서는, 『여지도서』에는 관아가 위치한 부내면(府內面)을 포함하여 13개 면으로 구성된다고 기록되었으며, 18세기 후반의 자료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부내면 포함 12개 면, 1909년의 민적법 실시를 위한 조사 자료인 『민적통계표(民籍統計表)』에도 부내면 등 12개 면으로 구성된다고 기록되었다.
변천
1518년(중종 13)에 고을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 밀양도호부를 밀양현으로 강등하였다가, 1522년(중종 17)에 밀양도호부로 복구하였다(『중종실록』 17년 2월 3일).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밀양군으로 변동되어 대구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밀양군은 경상남도 관할의 2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밀양군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 밀양부의 관아는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내이동 일대에 위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민적통계표(民籍統計表)』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호구총수(戶口總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