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보(美錢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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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온성진관에 속한 병마첨절제사진.

개설

미전보는 함경도 온성의 두만강 연변에 설치한 관방시설로 세종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성종대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 이곳은 니마차올적합(尼麻車兀狄哈) 등이 왕래하는 교통로로, 방어에 유리한 요충지였다. 그러나 점차 미전보의 군액(軍額) 등이 감소되며 어려움을 겪다가 고종대에 황척파(黃拓坡)에 합쳐져 혁파되었다.

위치 및 용도

미전보는 조선시대에는 온성부에 속해 있었고, 현재는 함경북도 온성군 미전면 미산리이다. 동쪽으로 경원군, 서쪽으로 온성읍, 북쪽으로 두만강을 사이로 중국 국경과 접한다. 미전보는 두만강을 건너 바로 여진의 땅과 맞대고 있고, 온성진(穩城鎭)과 훈융진(訓戎鎭) 사이의 중앙에 위치하는 적로(賊路)의 요충이면서 방어하기에 긴요한 곳이다.

변천 및 현황

미전보가 처음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여기에 온성의 요해처(要害處) 5곳 중 하나, 관방 3곳 중 하나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미전보가 경영된 것은 성종대였다. 1482년(성종 13) 5월에 미전이 온성과 훈융진 사이의 요충지이므로 성을 쌓아야 한다는 보고에 따라 이듬해부터 쌓기로 결정하였다(『성종실록』 13년 5월 21일). 이듬해 영안도관찰사(永安道觀察使)정문형이 미전보를 설치한 곳에 장성(長城)을 물려 쌓는 등의 일을 지금 거행하자고 한 내용을 통해 1483년에 성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성종실록』 14년 7월 17일).

한편, 같은 해 9월에 병조 판서 이극중이 미전진은 새로 설치한 곳인데, 첨절제사(僉節制使)는 녹(祿)이 있고 만호는 녹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며 미전보의 만호에게도 녹을 내리게 하였다(『성종실록』 14년 9월 12일).

당시 6진 지역은 군사적 중요성과 달리 군사가 부실하고, 떠도는 백성도 많았다. 미전진도 본래의 군사는 100명이지만 실제로 부방(赴防)하는 자는 겨우 70여 명이고, 기마자(騎馬者)도 20여 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를 위해 조정은 함경도와 함경남도의 부실(富實)한 사람 2, 30호를 옮겨와 살게 하는 등 사민(徙民)에 주력하였다(『성종실록』 18년 5월 10일)(『성종실록』 19년 1월 9일)(『성종실록』 19년 3월 21일).

이후 조선중기 미전보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은 『제승방략』이다. 여기에 의하면, 미전보는 북쪽으로 온성진과의 거리가 28리(약 11㎞)이고, 남쪽으로 황자파보(黃坡堡)와 25리(약 9.8㎞)라고 한다. 또한, 성의 둘레는 2,807척(약 851m)이고, 여장(女墻) 176곳, 옹성(擁城) 2곳, 곡성(曲城)이 9곳이다. 토병(土兵)은 81명, 남쪽 지방에서 부방(赴防)하는 군사(軍士)가 28명이다. 한편, 조선후기의 자료인 『만기요람』에는 성의 둘레가 3,639척(약 1,103m)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미전보는 원래 만호가 파견되었으나, 1645년 3월에 미전첨사김명길 등을 토병이 두만강을 넘어간 일로 처벌한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인조대부터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인조실록』 23년 3월 1일). 실제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서』에서도 이곳에 병마첨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청의 거점 도시인 훈춘이 가까이에 있어 청인과 조선인이 시도 때도 없이 도강하였다. 그러나 미전보 등 변방의 장수들이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조정에 보고하지 않는 사례들까지 나타났다. 이에 조정에서는 변방을 탐지하고, 엄격히 방비하도록 하기도 하였다(『영조실록』 13년 5월 22일).

아산보는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나, 방어와 재정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겨우 유지해 나가는 정도였다. 결국, 1883년(고종 20) 11월에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어윤중이 관북 지방에서 긴요하지 않은 각 진보(鎭堡)를 부근의 각 진보에 합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미산은 황척파에 합하며 군사적 기능을 상실하였다(『고종실록』 20년 11월 23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전회통(大典會通)』
  • 『제승방략(制勝方略)』
  • 『관북읍지(關北邑誌)』
  • 『국조보감(國朝寶鑑)』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여지도서(輿地圖書)』
  • 『난중잡록(亂中雜錄)』
  • 민현구, 『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한국연구원, 1983.
  • 오종록, 「조선초기의 병진방위와 병마첨사·만호」, 『역사학보』123,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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