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위관(問慰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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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의 환도(還島)를 문위하고 관백이나 도주의 경조사를 치하·조위하기 위하여 대마도에 파견된 사행 또는 사행에 참여한 당상·당하관의 왜학역관. 혹은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문위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한 관리.

개설

조선후기 대마도에 파견한 사행인 문위행에 정사와 부사로 참여한 당상관과 당하관의 왜학역관을 칭한다. 문위행은 총 54회에 걸쳐 파견되었는데 당대 대일외교의 전문가이자 외교담당자인 왜학 당상역관이 정사에 임명되었다. 쌍도해(雙渡海)의 경우에는 2명의 당상관이 파견되었다.

문위관은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문위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한 관리였다. 한편 중국에서 사절이 왔을 때 단오(端午)·칠석·중양(重陽)·동지(冬至) 등 명절을 당하게 되면 사신일행이 지나는 지역에 관원을 보내 위문하였는데, 이때 파견되었다. 문위관은 예조에서 사신이 지나는 지역의 당하(堂下) 수령을 차함(借啣)하여 차출하였고, 어첩(御帖) 및 예단(禮單)을 마련하였다.

담당직무

대마도에 파견되는 문위관은 왜학교회를 거친 자를 당상관에 임명하고, 당하관은 왜학교회 중 그 석차에 따라 뽑았다. 당상관은 왜학교회를 경험하였던 자이며, 당하관은 당해 연도 왜학교회 중에서 그 석차에 따라 임명하였던 것이다.

문위행의 당상관은 통신사행의 상통사에 해당하는데 통신사의 당상역관을 지낸 자는 문위행의 당상관을 지낼 수 있었으나, 단지 문위행의 당상관이나 당하관을 지낸 자는 통신사의 당상역관에 임명될 수 없었고 상통사에 임명될 수 있었다. 문위행의 당상관·당하관에 뽑혀 대마도에 다녀온 역관들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 당상역관과 그 외에 상통사·차상통사(次上通事) 등으로 통신사행에 참여한 예가 많이 보인다. 이것은 외교적 실무를 담당하였다는 차원에서 통신사행과 문위행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며 문위행이 외교실무를 담당, 추진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변례집요(邊例集要)』
  • 『통문관지(通文館志)』
  • 『춘관지(春官志)』
  • 『탁지지(度支志)』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이훈, 「朝鮮譯官使와 對馬島」, 『조선후기 한일관계사학술강연회 발표요지』 한국사학회, 1991.
  • 홍성덕, 「조선시대 「問慰行」에 대하여」,『한국학보』 59, 1990.
  • 홍성덕, 「조선후기 對日외교사절 問慰行의 渡航人員 분석」,『한일관계사연구』 11, 1999.
  • 田代和生, 「渡海譯官使の密貿易-對馬藩「潛商議論」の背景-」, 『朝鮮學報』 150, 1994.
  • 仲尾宏, 「朝鮮渡海使と對馬島」, 『爪生』 17, 1995.
  • 大場生与, 「近世日朝關係における譯官使」, 慶應義塾大學 석사학위논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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