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총요(武經總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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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년 북송(北宋) 시대에 증공량(曾公亮)과 정도(丁度) 등이 편찬한 총 40권의 종합 병서.

개설

『무경총요』는 선장(選將), 훈련, 편성, 진법, 보병과 기병의 응용, 수전(水戰), 축성 및 성곽전투, 무기와 장비 등 병학 전반을 기술한 병서다. 특히 이 책은 중국 병서사상 최초로 당시까지 개발된 각종 화기(火器)와 화약의 사용과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에는 1547년 최초로 도입되었고 임진왜란 중 명나라 장수를 통해 이 책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다. 17세기 중엽에는 이 책을 요약한 『무경절요』가 조선에서 간행되어 보급되기도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547년(명종 2) 4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북경에 간 정응두(鄭應斗)가 이 책을 구입하여 국왕에게 올렸다. 이에 명종은 곧바로 『무경총요』를 인출(印出)하게 하였다(『명종실록』 2년 4월 4일). 그러나 이 책은 곧바로 조선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이는 그 분량이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기존 전술과 다소 다른 측면이 있었던 점과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구원으로 온 명나라 장수에 의해 『무경총요』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고(『선조실록』 27년 3월 20일), 아울러 이 책을 요약하고 교정을 가한 8책의 『무경요람(武經要覽)』도 함께 중요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중엽에는 이 책을 요약한 7권 1책의 『무경절요(武經節要)』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서지 사항

송나라 당시 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명나라 정통(正統) 간본과 만력(萬曆) 간본이 전하고 있다. 아울러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전법에는 국가전략에서부터 세부적인 전술까지 여러 상황을 100가지 항목으로 묶어 열거하고 『무경칠서(武經七書)』 등에서 거기에 부합하는 구절을 뽑아 결구(結句)로 인용한 다음 이를 잘 응용할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적절한 역사적인 사례를 부기하였다. 전법 각 항목의 결구는 『손자』 60견을 비롯하여 『무경칠서』에서 88건을 인용하고 『논어』, 『서경』, 『후한서』 등에서 5건이 인용되었다. 출전이 불분명한 것이 7건이다. 그 사례는 고대 춘추시대부터 중세 송나라 시대까지의 중국 역사에서 인용하였다. 이 두 판본은 정운자(正韻字)로 인쇄하였다.

구성/내용

전집과 후집으로 크게 구분되며 전집은 제도(制度) 15권과 변방(邊防) 5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후집은 병전(兵戰)의 주요한 사례, 즉 고사(故事) 15권과 천문관측 등의 내용을 기록한 점후(占候)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법총서는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전법총론은 전법을 요약하여 그 의미를 재 강조한 것이다. 전법총론에는 주제문에 덧붙여 간주(間註)가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문장의 사이사이에 부기되어 있다. 초간본에는 본문과 함께 어영대장, 금위대장과 무위소의 책임자인 도통사(都統使)를 거친 김기석(金箕錫)의 발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무용위들이 이 책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듬해 간행된 중간본에는 황필수(黃泌秀)의 서문과 박영세(朴永世)의 후기가 추가되어 있다.

참고문헌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만기요람(萬機要覽)』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일성록(日省錄)』
  • 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劉慶,『中國宋遼金夏軍事史』, 人民出版社, 1994.
  • 정하명, 『고병서해제』, 육군본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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