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언해(妙法蓮花經諺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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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묘법연화경언해 |
한글표제 | 묘법연화경언해 |
한자표제 | 妙法蓮花經諺解 |
분야 | 종교/불교/국어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조 |
집필자 | 성낙수 |
간행처 | |
간행년일 | 1463년(세조 9) |
권책수 | 7권 7책 |
표제 | 법화경(法華經) |
소장처 | 동국대학교 도서관, 규장각, 서울대학교 일사문고, 서울대학교 가람문고, 성암고서박물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묘법연화경언해(妙法蓮花經諺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9년 9월 2일 |
1463년(세조 9)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에 세조(世祖)가 구결을 달고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해한 언해서.
개설
『묘법연화경언해(妙法蓮華經諺解)』는 세조가 『묘법연화경』의 구결을 달고, 세조의 명을 받은 윤사로(尹師路)·황수신(黃守身) 등이 번역한 책이다. 『묘법연화경』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法華經)』이라 약칭하기도 하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경전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으뜸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로 꼽혔다.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전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漢譯本) 중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이 가장 널리 보급·유통되었다.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에 이은 간경도감의 두 번째 불경 언해서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463년(세조 9)에 『법화경』 곧 『묘법연화경』에 세조가 구결을 달고 간경도감의 윤사로·황수신이 번역하여 간행한 7권짜리 책으로 목판본이다. 불교 경전의 국역(國譯)과 간행사업을 위해 설치하였던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인쇄하였다. 이 책의 체재와 번역의 양식 등은 간경도감 간행의 목판본 『능엄경언해』ㆍ『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등과 일치한다. 책머리에 1463년 9월 2일자로 된 간경도감 도제조윤사로의 전(箋)이라 써 있고, 『세조실록』의 같은 날짜에는 간경도감에서 새로 간행한 『법화경』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세조실록』 9년 9월 2일)
한편 이 책 외에도 1459년(세조 5) 제작된 조선시대 최고(最古)의 목판본 『묘법연화경』이 있다. 절첩본으로 제작된 이 판본은 세종(世宗)의 며느리이자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부인 평산 신씨(平山申氏)가 발원해 간행하였으며, 현재는 일본의 사찰 세이라이지[西來寺]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판본 1권에 수록된 변상도의 특징은 석가여래 앞에 무릎을 꿇고 불법을 청하는 ‘보살형 청문자’이다. 이 판본은 평산 신씨가 세조와 그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자의 복을 기원하는 동시에, 세종과 그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세조의 요절한 장남 의경세자(懿敬世子), 19세에 요절한 자신의 남편 광평대군 등의 명복을 빌고자 간행했다. 5면에 걸쳐 전개되는 변상도는 중앙에 자리한 부처님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을 위시한 10대 제자, 8보살, 제석, 범천, 사천왕과 팔부중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부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불을 드리는 뒷모습의 보살형 청문자가 표현되어 있다. 보통 변상도의 청법자는 스님의 옆모습인 경우가 많은데 여성의 표현은 처음 있는 경우로 이는 발원자인 평산 신씨일 가능성이 높다.
서지 사항
7권 7책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전하는 책의 크기는 세로 34.7㎝, 가로 24.5㎝이다. 목판본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원간본으로 보이는 책은 영본으로 현재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권1, 6, 규장각에 권2, 3, 4, 5, 6, 7, 서울대학교 일사문고와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권4와 권7, 성암고서박물관에 권2, 3, 4, 7 등이 전한다. 복각본은 상당히 많은데, 간기가 확인된 것만 3종이 있다. 1523년(중종 18)의 한 사찰, 1545년(인종 1)에서 1547년(명종 2) 사이의 전라도 나주 중봉산 쌍계사, 1764년(영조 40)에서 1768년(영조 44) 사이의 충청도 덕산 가야사에서 간행된 책들이다. 이들 복각본은 원간본의 판심 서명인 『법화경』을 ‘法華(법화)’, ‘法(법)’으로 줄이는 등 정밀한 판각은 아니지만, 번역은 대체로 원간본대로 되어있으므로 원간본과 동일한 자료로 다루어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들 복각본과 전혀 다른 중간본이 전한다. 원간본의 주석문을 삭제하고, 『법화경』 본문의 번역만 수록한 책이다. 번역은 원간본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각자병서의 폐기와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 표기의 지양에서 차이를 보인다. 간년은 1500년(연산군 6)으로 되어 있으며, 권1, 21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권4, 1책이 성암문고에 전한다. 그밖에 『법화경』의 서문만 번역한 책과 본문에 한글로 한자 독음만 달아놓은 책이 있다. 모두 <임진왜란(壬辰倭亂)> 뒤에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각종 중간본을 포함해 국어사 연구의 기본 자료로 이용된다.
구성/내용
『묘법연화경』은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한데 묶어 요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406년에 구마라집이 한역한 것이 주로 간행·유통되었고, 그 뒤 송(宋)나라 계환(戒環)이 본문의 뜻을 쉽게 풀이한 주해본(註解本) 7권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책은 『묘법연화경』 본문과 계환의 풀이 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15세기 중반의 한글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특히 ‘교정’인이 찍혀 있는 초인본(初印本)으로의 가치도 지닌다. 이 책의 표기법은 『능엄경언해』와 대체로 같으나, 특이한 점은 ‘ㅆ’과 ‘ㅅ’이 혼동되어 쓰이고, 관형사형 접미사를 ‘ㅭ’에서 ‘ㆆ’을 쓰지 않고, ‘ㄹ+각자병서’로 써야 할 한자어에 그냥 ‘ㅭ+한자어’ 또는 ‘ㄹ+한자어’로 썼다는 점이다. 다만 ‘ㄹ’ 다음에 ‘ㅃ’이 쓰인 예가 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박종국, 『한국어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안병희, 「중세어의 한글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규장각』 3, 서울대학교, 1979.
- 정왕근, 「조선시대 묘법연화경의 판본 연구」,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2.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