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임중(睦林重)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1638년(인조 16)∼1698년(숙종 24) = 61세]. 조선 후기 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홍문관 교리(校理)⋅사간원 사간(司諫)이다. 자(字)는 사중(士重), 또는 계임(季任)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병조 참지(參知)목겸선(睦兼善)이고, 어머니 여흥민씨(驪興閔氏)는 부원군(府院君) 민형남(閔馨男)의 딸이다. 한성부 우윤(右尹)목서흠(睦敍欽)의 손자이고, 좌의정목내선(睦來善)의 조카이고, 대사간목임유(睦林儒)의 동생이다. 정파는 남인(南人)에 속하였다.

숙종 시대 활동

1675년(숙종 1)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8세였다.[<사마방목>] 음직(蔭職)으로 경기안산군수(安山郡守)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이 정권을 잡고, 남인(南人)이 축출당하자, 과거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고, 서인이 축출당하자, 남인의 중심인물이었던 막내 삼촌 목내선(睦來善)이 좌의정이 되었다. 이에 과거를 볼 용기를 내어, 1690년(숙종 16) 정시(庭試)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53세였다.[<문과방목>] 그 뒤 1691년(숙종 17)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어,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을 겸임하였다. 뒤이어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는데, 그때 4촌인 목임일(睦林一: 목내선 아들)은 이조 참의(參議)에 임명되었다.

1692년(숙종 18)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어, 홍문록(弘文錄)에 선록(選錄)되었고, 1693년(숙종 19)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다가,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어, 세자시강원 보덕(輔德)을 겸임하였다. 그 뒤에 홍문관 교리(校理)로 승진하였다가, 다시 사간원 사간이 되었고, 1694년(숙종 20)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었으나,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고, 남인이 몰락하자, 목임중도 파직되었다.

1697년(숙종 23) 당하관(堂下官)인 사도시 정(正)에 임명되었으나, 목임중은 출사(出仕)하지 않고 체임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숙종이 노하여 추고(推考)하라고 명하여, 체포되어 형문(刑問)을 받았고, 1698년(숙종 24) 병으로 서울 집에서 돌아갔는데, 향년이 61세였다.

부인과 후손

첫째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덕하(李德夏)의 딸이고, 둘째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이경휼(李慶霱)의 딸이다.[<방목>] 장남은 목천두(睦天斗)이고, 차남 목천수(睦天壽)는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佐郞)을 지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갈암집(葛庵集)』
  • 『검재집(儉齋集)』
  • 『국조보감(國朝寶鑑)』
  • 『백호전서(白湖全書)』
  • 『백호집(白湖集)』
  • 『성호전집(星湖全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은유고(海隱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