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집(牧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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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색의 시문집이다. 1404년(태종 4) 아들 이종선(李宗善)에 의하여 간행되었는데, 『동문선(東文選)』 권9에는 『목은집(牧隱集)』 70권이란 기록이 있어, 전래본과 다른 판본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태조실록(太祖實錄)』 5년 6월 이색 졸기(卒記)에는 55권이라는 기록이 보이고 있어, 『목은집』은 처음부터 55권이 편찬되었으며, 1404년 종선이 간행할 때에는 다른 유문(遺文)을 모아 증감하고 권질과 차서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위의 졸기 중에 '행우세(行于世)'라는 글이 있어, 1404년 간본과 다른 판본 또는 사본이 선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기도 하는데, 이 점은 1401년(태종 1)에 서울에 왔던 명(明)나라 사신 장근(章謹)이 『목은이색문집』을 청하였을 때 조준(趙浚)이 “온전한 간본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 『목은집』은 자료수집 단계가 끝났으나, 미완성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404년에 간행된 이 책은 13년간 세상에 유포되었으나, 1417년(태종 17) 음양참위서(陰陽讖緯書)를 금하는 율령이 내려져, 이색의 문집도 거두어들이는 일이 생겼다. 이 책은 음양금기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조선왕조의 세계(世系)에 관한 기록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이색이 지은 시문집으로 원래 그의 아들 이종선이 70권으로 편집해서, 1404년(태종 4)경 간행하였으나, 1417년(태종 17) 당국의 검열에 걸려, 15권이 압수되어 불태워졌다고 하며, 이 때문에 현행본 55권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세조(世祖) 연간에 그의 손자 이계전(李季甸)이 『목은시정선(牧隱詩精選)』 6책을 간행했고, 7대손이 1583년(선조 16) 『목은문고(牧隱文藁)』 18권 5책으로 홍주(洪州)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55권본이 시문집으로 따로따로 간행되기도 했으며, 역시 그의 저작을 가장 많이 수록하고 있다. 이것을 1959년 대동문화연구원(大東文化硏究院)에서 『여계명현집(麗季名賢集)』 속에 수록하여 영인하였다.

이색의 시·문은 방대한 양일 뿐 아니라 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와 문을 갈라서, 따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즉, 후손 이계전이 오언·칠언 고(古)·율시를 선별, 분류해 『목은시정선』 6권을 편찬하고, 서거정(徐居正)의 서문을 붙여, 후손 이봉(李封)에게 간행하게 한 판본이 현재에도 전하고 있다.

또한 문만을 모아, 『목은문고』 18권은 1583년 홍주목사최흥원(崔興遠)이 간행한 바 있다. 그 뒤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거의 유전되지 않는 상태였으므로, 다시 후손 이덕수(李德洙)가 1626년(인조 4)에 『목은집』을 간행했고, 다시 1686년(숙종 12) 대구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서지 사항

55권 2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雙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19.4×14.3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有), 주쌍행(注雙行),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1.6×20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에서 저자는 시문류와 산문류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권수에 권근(權近)·이첨(李詹)의 서문, 연보·교서(敎書)·행장·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고목록(詩稿目錄)과 문고목록(文稿目錄)이 별책으로 구분, 정리되어 있다. 시고 권1∼35까지는 사(辭)·조(操)·소부(小賦), 그리고 시 8천여 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의 양과 질에 있어서 고려조에 유일한 대가로 인정할 만하다.

시에서는 근체·고체·오언·칠언 등 각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으며, 악부체(樂賦體) 또한 후인이 미치지 못할 만큼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다.

문고 권1∼6에 기(記) 75편, 권7∼9에 서(序) 39편, 권10에 설(說) 21편, 권11∼13에 표(表) 22편, 찬(讚) 11편, 잠(箴)·전(箋)·변(辨)·작(作)·후(後)·발(跋) 등 33편, 권14∼20에 비(碑)·명(銘)·전(傳) 등 3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색의 문장은 시와 같이 중국에서 한림(翰林) 벼슬을 한 경력과 능력으로 육경(六經)과 제자서(諸子書)를 두루 구사, 원용했으며, 변려문(騈儷文)보다는 산체(散體)를 잘 지었다. 이색의 시문은 문학 작품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말의 지식인 사회와 정치 상황을 알아보는 사료로서도 귀중하다.

문고 권20의 기·서·표·전 등은 당시 이색이 교유한 지식인과 정치 담당자들의 전기적 자료가 대부분이다. 정치·사회에 관한 원천적 사료라 할 수 있다. 이미 『고려사(高麗史)』의 기본 자료로 활용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이색은 스스로 불교와는 인연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찰기, 승려들의 비문 등은 이색의 교우관계에 대한 폭을 알게 한다. 이 기록들은 불교에서 유교로 전향되는 과도기적인 사상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고병익, 「牧隱集」, 『高麗名賢集』 3,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3.
  • 여운필, 『李穡의 詩文學 研究』, 태학사, 1995.
  • 이색 저·임병기 역, 『국역 목은집』 1~11권, 민족문화추진회, 2000-2002.
  • 이석구, 『國譯稼亭集牧隱集』, 민족문화사, 1983.
  • 이우성, 「牧隱에게 있어서 禑昌問題 및 田制問題」, 『牧隱 李穡의 生涯와 思想』, 일조각, 1996.
  • 이익주, 「『牧隱集』의 간행과 사료적 가치」, 『진단학보』 제102호, 진단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