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전(慕慈殿)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모자전 |
한글표제 | 모자전 |
한자표제 | 慕慈殿 |
상위어 | 혼전(魂殿) |
관련어 | 소혜왕후(昭惠王后)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현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모자전(慕慈殿)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연산군일기』 10년 4월 27일 |
덕종의 비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소혜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내용 및 특징
모자전(慕慈殿)은 덕종(德宗)의 비 소혜왕후의 혼전이다. 소혜왕후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이다. 성종이 생부 의경세자(懿敬世子)를 덕종으로 추숭하자 어머니인 소혜왕후 또한 세자빈에서 왕후로 책봉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4월 27일 소혜왕후가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승하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소혜왕후는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로 존숭받았다(『연산군일기』 10년 4월 27일). 그런데 『연산군일기』에는 소혜왕후의 국상과 관련한 기록이 매우 소략하여, 빈전(殯殿)을 어디에 마련했으며, 혼전의 전호(殿號)는 언제 정했고 어느 전각에 설치했는가에 대한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국상은 단상(短喪)으로 치러졌다. 소혜왕후의 국상과 관련해 묏자리는 덕종의 무덤인 경릉(敬陵)의 백호(白虎)에 있는 계좌 정향(癸坐丁向)의 간산(艮山)으로 정하고, 성복(成服), 시호(諡號)·휘호(徽號)를 정하며, 초재(初齋), 조전(祖奠), 발인(發引)하였다는 정도가 확인된다.
1506년(연산군 12) 8월 24일에 ‘소혜왕후의 부묘를 이미 섭행하도록 했다.’는 전교가 있다. 1788년(정조 12)에 편찬된 『춘관통고(春官通考)』에는 8월 23일에 부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 池斗煥, 『朝鮮前期 儀禮硏究―性理學 正統論을 中心으로―』,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