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경(冒耕)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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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모경 |
한글표제 | 모경 |
한자표제 | 冒耕 |
관련어 | 제언(堤堰), 봉산(封山), 송금(松禁), 목장(牧場), 마장(馬場) |
분야 | 경제/산업/농업 |
유형 | 관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염정섭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모경(冒耕) |
제언(堤堰) 안쪽, 봉산(封山) 지역, 목마장(木馬場) 등 농사짓기가 금지된 곳에서 함부로 농사짓는 일.
개설
모경(冒耕)은 농사지을 수 없는 곳에 함부로 경작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제언을 축조하여 물을 담아두어야 할 곳인데도 제방을 터서 물을 빼거나 아예 제방을 무너뜨려 물이 빠진 곳을 함부로 농지로 삼아 농사짓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모경이다. 목장(牧場)이나 마장(馬場)과 같이 소나 말을 키우기 위해 설치된 곳을 함부로 농지로 만들어 농사짓는 것도 모경이었다. 또한 봉산(封山) 지역에서 함부로 산지를 개간하는 것도 모경에 해당했다. 모경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경을 범할 경우 처벌이 뒤따랐다. 하지만 개간 가능지가 크게 줄어들었을 때 제언 내 모경, 목마장 모경 등이 향촌지역의 권세가 등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다.
연원 및 변천
내용
제언 안쪽을 모경하는 것은 제언의 기능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수리시설로 제언을 쌓는 것은 권농 차원일 뿐만 아니라 흉년을 대비하는 계책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제언 내의 경작 가능지를 모경하기 위해서는 제방을 헐어내어 저수(貯水)가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수리(水利)의 효과를 상실시키는 이러한 모경 행위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제언 모경을 통해 경작지를 확충하려는 행위에 중앙의 권세가들도 적극 동참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사(朝士), 토호(土豪) 등도 빠짐없이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이들은 제언 모경을 뛰어넘어 아예 제언을 사적으로 취하여 제언 내부의 경작 가능지를 농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제언 인근 지역의 농민들도 제언 모경에 참여하였다.
목마장에서도 제언 모경과 동일한 양상의 모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목장이나 마장은 말을 사육하는 곳이어서 많은 초지(草地)가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농지로 전환시키기에 적당한 곳이 많았다. 농민들이나 토호들은 목마장의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서 모경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행위가 발각되었을 때 조정에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는 환진(還陳)을 명하고 모경한 자들을 처벌하였다. 반대로 해당 목마장에 사육할 우마(牛馬)가 없는 경우에는 목마장의 모경을 합법화하여 개간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봉산 지역은 대개 송금(松禁) 조처가 병행되고 있었는데, 이는 소나무를 키워내어 전선(戰船)이나 조선(漕船), 궁궐의 영선(營繕) 등의 작업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깊은 산속이 아닌 섬 지역의 봉산은 모경을 감행하기 용이하였다. 그리하여 안면곶 등지의 봉산 지역의 모경이 자행되었고, 이에 대한 엄한 처벌이 내려졌다. 또는 묘소를 만드는 것을 빙자하여 모경이 이루어지고, 이와 더불어 소나무를 몰래 채벌하는 행위도 이루어졌다. 모경은 국가에서 금지하는 것으로 처벌 대상으로 전가사변(全家徙邊)이라는 처벌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모경을 통해서 획득한 이득은 몰수되었다. 하지만 허물어진 제언이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봉산, 우마를 더 이상 사육하지 않는 목마장인 경우 등 명목만 남아 있을 때 이를 농지로 바꾸는 행위를 모경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조정이 모경 금지와 모경 용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모경에 나선 농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한편 주인이 있는 땅을 몰래 경작하는 모경도 처벌 대상이었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참고문헌
- 김용섭, 『증보판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Ⅱ, 일조각, 1990.
- 문중양, 『조선후기 수리학과 수리담론』, 집문당, 2000.
- 최원규, 「조선후기 수리기구와 경영문제」, 『국사관논총』39, 199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