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강목(明史綱目)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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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명사강목 |
한글표제 | 명사강목 |
한자표제 | 明史綱目 |
분야 | 역사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숙종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이현석 |
간행처 | |
간행년일 | 18세기 초 |
권책수 | 24권 30책 |
사용활자 | 금속활자 |
표제 | 명사강목(明史綱目)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장서각, 고려대학교 도서관, 부산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명사강목(明史綱目) |
이 책은 조선 후기 이현석(李玄錫, 1647∼1703)이 저술한 명(明)나라 역사서다.
개설
이 책은 이수광의 증손자인 이현석이 지은 중국 명나라의 역사서로서, 저자는 근기 남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조선이 명나라의 의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명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는 의도에서 썼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저자인 이현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遊齋)이며, 실학자인 이수광의 증손이다. 1682년(숙종 8) 우승지가 되었으나, 송시열 등 서인의 예론을 반대하다가 철원에 유배를 갔다. 그 뒤 한성부 판윤·우참찬·형조 판서 등을 역임했다. 탕평책과 중농정책을 건의했으며, 경연강의의 교재의 개편을 진언하기도 했다. 경제세무에 관한 실용적인 사상을 가지고, 조세의 감면 등 각종 정책을 입안했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이론보다는 실천적인 덕목에 치중하였다.
1697년(숙종 23) 이현석은 숙종이 자신을 도승지로 임명하자,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자신이 명나라의 역사를 수찬하고 있어 겨를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명나라의 역사를 다룬 기존 역사서들이 매우 소략할 뿐 아니라, 서술의 경중도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기준에서 볼 때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 다음 조선에서 명나라 역사서를 찬술해야 하는 이유를 명나라의 제도를 준용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뿐이라는 사실에서 찾음으로써 명나라에 대한 계승의식을 표명하였다. 이와 함께 이러한 작업이 명나라를 잊지 못하는 조선의 지극한 마음을 후세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저술하던 그는 명나라가 멸망한 지 60년이 되는 1704년(숙종 30) 3월까지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작업을 추진했지만, 신병으로 인해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사후 후손들에 의해 완성되어 1728년(영조 4) 영조에게 진상되었다. 이때 진상된 『명사강목』은 1736년(영조 12)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1771년(영조 47)에 조선왕실의 종계문제와 관련된 『명기집략(明紀輯略)』의 저자인 주인(朱璘)의 평이 실렸다는 이유로 그 부분이 세초된 후에 왕명에 의해서 재간행되었다.
서지 사항
원집(原集) 24권, 보유(補遺) 1권, 부록 1권, 공(共) 2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금속활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21.5×13.7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2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0.0×18.5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장서각, 고려대학교 도서관, 부산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명나라의 역사를 태조 고황제부터 남명의 영력제까지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이지만, 남명의 황제들은 ‘권24 의종’에 대한 기록에 뒤이은 부록에 별도로 실어놓았다. 이 때문에 이현석이 남명을 정통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후대 인물들의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각 황제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기술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원병을 파견한 신종 대의 기록이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조선을 ‘중화의 유일한 계승자’라고 인식한 조선의 지배층은 조선에서 명나라의 역사를 편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인식을 지녔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조선 지배층의 ‘중화계승의식’을 가장 먼저 구현한 대표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부터 명나라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은 시대적인 과제이자 유행이 되어, 정교(鄭喬)의 『남명강목(南明綱目)』에서 보이듯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지배층의 ‘중화계승의식’을 가장 먼저 구현한 대표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孙卫国, 「朝鲜王朝的一部明史論着-李玄锡之《明史纲目》硏究」, 『中国歷史与史学』, 北京图书馆出版社, 1997.
- 안순태, 「이현석(李玄錫)의 생애(生涯)와 한시(漢詩)」, 『한국한시작가연구』 12권, 한국한시학회, 2008.
- 오금성, 「朝鮮學者之明史硏究」, 『中韓關係史國際硏討會論文集』, 中華民國韓國硏究學會, 1981.
- 허태용, 「17세기 말~18세기 초 中華繼承意識의 형성과 正統論의 강화」, 『진단학보』 제103호, 진단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