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당(明倫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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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성균관과 향교 학관들이 재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던 강당.

개설

명륜당은 서울의 성균관뿐만 아니라 지방의 향교에도 있다. ‘명륜(明倫)’이란 인륜을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등문공편(滕文公篇)」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 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성균관의 유생은 명륜당에서 글을 배우고 익혔으며, 유생의 자치회인 재회(齋會)라든가 대사성의 취임식 등 여러 행사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성균관 명륜당은 1398년(태조 7)에 세워졌다. 명륜당은 성균관의 교육 공간 중에 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데, 그 위치는 벽송정(碧松亭) 아래 대성전(大成殿) 뒤에 있었다. 좌우에 협실(夾室)이 있고 중간에 당(堂)이 있어 총 18칸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 안에는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중 하나로 수록되어 있는 주희(朱熹)의 ‘백록동규(白鹿洞規)’ 현판이 있고, 2개의 어필 현판, 송준길(宋浚吉)이 쓴 「심잠(心箴)」과 「경재잠(敬齋箴)」이 있다. 그 밖에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등 여러 현판이 걸려 있다. 뒷벽 위에 금으로 쓴 ‘명륜당(明倫堂)’이라는 글씨는 주자의 글씨이다. 앞 처마에는 1606년(선조 39)에 명나라의 주지번(朱之蕃)이 사신으로 와서 먹으로 쓴 ‘明倫堂’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한편 지방의 부·주·군·현 향교에도 명륜당이 있었고, 그 구조는 성균관과 같았다. 그러나 그 규모는 교생수와 관련되어 성균관 명륜당 보다 작았다.

조직 및 역할

명륜당 좌우의 협실은 학관의 연구실 같은 곳이고, 중간에 당(堂)이라 불리는 대청은 강의실이다. 이 대청과 기숙사의 청소·수리 등은 하인인 대청지기가 담당하였다.

성균관 명륜당은 유생들의 자치회인 재회(齋會)가 열리는 곳이자 대사성의 취임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왕이 성균관의 문묘를 참배하는 알성(謁聖)이 있은 후에는 명륜당 뜰에서 알성시를 거행하기도 했다(『태종실록』14년 7월 17일).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도 알성을 하면, 대제학이 먼저 명륜당 옆에서 기다리고, 명을 받은 낭관(郎官)이 예물을 가지고 동궁을 맞으며, 동궁은 예물을 드린 후 대제학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장마 후에 문묘에 비가 새는 데가 있으면, 호조(戶曹)봉심(奉審)하여 고유제(告由祭)를 지낸 뒤, 봉안된 위패를 명륜당의 마루에 이안(移安)했다가, 기술자가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바꾼 후에 다시 봉안하였다.

변천

성균관 명륜당은 1398년에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6년에 중건(重建)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왕이 장차 알성을 하려고 할 때 호조가 명륜당이 대부분 기울고 퇴락하였음을 지적하고 선혜청을 건축하고 남은 자재로 보수하기를 요청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참고문헌

  • 『반중잡영(泮中雜詠)』
  • 『태학지(太學志)』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