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羃)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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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멱 |
한글표제 | 멱 |
한자표제 | 羃 |
관련어 | 멱준소포건(冪尊疏布巾), 뢰(罍), 준(尊), 준소(尊所), 혼전(魂殿) |
분야 | 왕실/왕실의례/길례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현진 |
용도 | 준뢰(尊罍)를 덮는 덮개 |
재질 | 대나무, 베, 갈포(葛布)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멱(羃) |
제례에 사용하는 술병인 준(尊)과 뢰(罍)를 덮는 덮개.
개설
준과 뢰는 제사 의례에서 각종 술을 담는 데 사용하는 술병이다. 멱은 길례, 가례, 흉례의 여러 의식에서 술 항아리를 놓는 장소인 준소(尊所)나 혼전(魂殿) 등에 진설된 준과 뢰를 덮는 데 사용하였다.
1451년(문종 1)에 편찬된 『세종실록』「오례」에는 멱을 ‘멱준소포건(冪尊疏布巾)’이라 하여 성근 베로 만든 네모진 덮개를 도설로 제시하였는데, 멱과 준은 명칭만 다를 뿐 외관이나 용례는 동일하다. 『춘관통고(春官通考)』에는 십자형의 구름 문양을 넣은 멱의 그림을 수록하고 있는데, 구름 모양 장식이 들어가서 아무 문양이 없던 것과는 외관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쓰임새는 같았다.
연원 및 변천
중국 고대부터 있어온 것이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중국 고대의 삼례(三禮) 가운데 하나인 『주례(周禮)』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멱의 연원은 『주례』의 편찬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의 『세종실록』「오례」에 처음으로 도설(圖說)이 등장하였다.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정조대의 『춘관통고』, 대한제국 시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 역대 전례서(典禮書) 및 의궤(儀軌)에 다양한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형태
대나무로 멱의 틀을 만들고 겉과 속을 베나 거친 갈포(葛布)로 싸는데, 겉은 검은색으로, 속은 붉은색으로 싼다. 중국 남송대 주희(朱熹)가 지은 『소희주현석전의도(紹煕州縣釋奠儀圖)』를 살펴보면, 옛날에는 멱에 씌울 베[布]의 폭을 2자 2치(약 67㎝)로 하고 둥그런 모양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베의 폭을 1자(약 30㎝)로 하고 네모나게 만든다.’라고 되어 있다. 또 『주례』에 의하면, “팔준(八尊)은 천지(天地)에 헌작(獻酌)하기 위해 거친 베로 된 건[疏布巾]을 사용하는데 이는 질박함을 숭상하기 때문이며, 육이(六彝)는 종묘에 관향(祼享)하기 위해 고운 베로 된 건[布巾]을 사용한다. 한편 멱에 십자형의 구름 문양을 넣은 것과, 국가 제사에서 희생으로 사용하는 송아지인 특생(特牲)을 담은 제기를 덮는 멱은 모두 거친 갈포를 쓴다.”라고 하였다. 준(尊)과 이(彝) 역시 제기로 준은 신위에 잔을 올릴 때 쓰는 술잔의 일종이고, 이는 강신(降神)을 할 때 울창주를 담는 용도로 쓰는 용기였다. 이것들에 모두 멱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춘관통고』에는 십자형의 구름 문양을 넣은 멱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종묘의궤(宗廟儀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소희주현석전의도(紹熙州縣釋奠儀圖)』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