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서(孟胄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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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22년(광해군 14)∼졸년 미상.] 조선 중기 효종~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병조 참의(參議)⋅호조 참의⋅충청도 관찰사(觀察使)이다. 자(字)는 휴징(休徵)이다. 본관은 신창(新昌)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안동부사(安東府使)맹세형(孟世衡)이고, 어머니 최씨(崔氏)는 최준(崔濬)의 딸이다. 좌의정맹사성(孟思誠)의 9대손이고, 대사간맹만택(孟萬澤)의 아버지이다.

효종 시대 활동

1654년(효종 5) 식년(式年)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3세였다.[<문과방목>] 예문관 검열(檢閱)에 보임되었다.

현종 시대 활동

1660년(현종 1) 예문관 대교(待敎)가 되었고, 1663년(현종 4)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예문관 봉교(奉敎)로 승진하였다.

1664년(현종 5)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다가,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었다.

1666년(현종 7) 사은사(謝恩使) 겸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정사(正使)허적(許積)과 부사(副使)남용익(南龍翼)과 함께 중국 청나라 서울 연경(燕京)에 갔다가 돌아왔다.

1670년(현종 11)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서, 흉년을 만나서 진휼청(賑恤廳)의 적미(糴米) 4천 석을 풀어서 기민(饑民)을 구제하였고, 폐지된 은율현(殷栗縣)을 다시 현(縣)으로 복구시켰다.

1671년(현종 12) 공조 참의(參議)가 되었다가,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어, 우승지(右承旨)로 승진하였다. 그때 둘째아들 맹만택(孟萬澤)이 현종의 맏딸 명선공주(明善公主)와 약혼하였는데, 명선공주가 미처 시집오기 전에 갑자기 죽었다.

1672년(현종 13)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가, 예조 참의가 되었다.

1673년(현종 14) 병조 참의에 임명되었다가, 호조 참의로 옮겼다. 그 뒤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숙종 시대 활동

1678년(숙종 4) 안동부사(安東府使)가 되어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 공으로 종2품하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陞品)되어 경연(經筵)의 특진관(特進官)에 임명되었다.

부인과 후손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홍일(李弘逸)의 딸인데,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다. 장남은 맹만익(孟萬益)이고, 차남 맹만택(孟萬澤)은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충청도 감사(監司)를 지냈고, 삼남 맹만석(孟萬錫)은 현감(縣監)을 지냈다.[족보]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곡운집(谷雲集)』
  •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 『구소집(鳩巢集)』
  • 『도곡집(陶谷集)』
  • 『도암집(陶菴集)』
  • 『동춘당집(同春堂集)』
  • 『명곡집(明谷集)』
  • 『백호집(白湖集)』
  • 『병산집(屛山集)』 『송자대전(宋子大全)』
  • 『양파유고(陽坡遺稿)』 『염헌집(恬軒集)』 『이계집(伊溪集)』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임하필기(林下筆記)』 『청대집(淸臺集)』 『퇴우당집(退憂堂集)』
  • 『한포재집(寒圃齋集)』 『현암유고(玄巖遺稿)』 『호곡집(壺谷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