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족(盟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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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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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맹족 |
한글표제 | 맹족 |
한자표제 | 盟簇 |
상위어 | 공신회맹제(功臣會盟祭) |
관련어 | 맹서문(盟誓文), 재서(載書) |
분야 | 정치/인사/녹훈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조선 |
집필자 | 신명호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맹족(盟簇)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5년 8월 29일 |
공신회맹제에서 사용된 맹서문과 동일한 내용을 족자 형식으로 기록한 문서.
내용
공신회맹제에서 사용되는 맹서문은 왕과 공신들이 천지신명 앞에서 맹서하는 글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회맹제에 참여하는 공신들의 공훈 내용을 적고 서로 협력하여 국가에 충성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맹서하는 내용이었다. 맹서문은 참여자들을 대표하여 왕이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례』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정현(鄭玄)은 맹서문에 대하여 “맹서하는 자들이 맹서문을 책(策)에 쓰고 희생을 잡아 피를 취하고, 그 희생을 땅에 묻고 희생 위에 글을 더하여 묻는다. 그러므로 맹서문을 재서(載書)라고 한다.”고 해설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맹서문을 재서라고 하였다.
맹서문은 홍문관에서 지어서 올렸으며 왕이 직접 서압(署押)을 하였다. 맹서문은 받침대에 올려서 회맹단 위에 천지신명의 신주 오른쪽에 두었다가 회맹제 때에 삽혈(歃血) 후 독서문관(讀誓文官)이 읽었다. 독서문관은 천지신명의 신주를 향하여 맹서문을 읽었다. 이 의식이 이른바 삽혈동맹(歃血同盟)이었다. 회맹제 때에 사용한 맹서문은 회맹제 직후에 곧바로 희생물과 함께 회맹단 북서쪽에 파 놓았던 구덩이에 묻었다. 공신들에게는 회맹제가 끝난 이후 맹서문과 동일한 내용을 족자 형식으로 만든 맹족을 배부하였다. 맹족에는 왕과 공신들이 모두 자신의 성명을 직접 서명하여 그 권위를 높였다.
용례
開國定社佐命功臣 咸會議政府 簽名于盟簇 賜酒(『태종실록』 5년 8월 29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주례(周禮)』
-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
- 『국조공신록』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정승모, 「會盟誓文: 조선 태종 4년(1404) 11월 공신회맹제 때 작성한 誓文의 板刻本」, 『역사민속학』 3,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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