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정(望遠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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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유명했던 왕실 정자.

개설

망원정(望遠亭)은 조선전기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서호(西湖) 지역에 조성한 정자이다. 원래는 세종이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이름을 내렸으나, 성종대에 월산대군(月山大君)이 망원정이라 고쳤다. 동호(東湖)의 제천정(濟川亭)과 함께 외국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위치 및 용도

한강 서호의 누정은 한강이 시야에 들어오도록 경강(京江) 북안에 조성되었다. 강 남안에서는 잉화도(仍火島)와 밤섬의 영향으로 한강을 조망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북안에 몰려 조성되었다. 그 중 망원정은 왕실의 누정이자 외국사신을 접대한 정치와 외교의 장소로 유명했다. 망원동 주변에는 청운정(淸雲亭), 수일루(水一樓), 평초정(平楚亭), 낙수정(樂水亭), 호인정(好仁亭), 탁영정(濯瓔亭), 안류정(岸柳亭), 팔관정(八觀亭) 등 많은 정자가 있었는데, 거의 다 소실되었다.

세종은 종종 이곳에 행차하여 수군의 훈련을 살피고(『세종실록』 16년 3월 18일), 백성들의 농사를 시찰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8년 4월 7일). 또한 중국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세종실록』 32년 윤1월 16일). 세조대에도 전함 구경, 활쏘기 구경, 연회, 수전 구경 등이 행해졌다(『세조실록』 2년 5월 11일).

변천 및 현황

어느 날 세종이 이 정자에 행차하였는데 큰비가 내렸다. 마침 그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하던 터라 모두들 비 오기를 고대하던 차에 왕의 행차와 함께 많은 비가 내렸으므로 왕은 이를 흡족히 여겨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이라 부르게 하였다(『세종실록』 7년 5월 13일). 성종대에 효령대군이 월산대군에게 희우정을 하사한 후, 월산대군이 망원정이라 이름을 고쳤다. 성종은 이에 망원정시(望遠亭詩)와 아울러 서(序)를 지어 내렸다(『성종실록』 15년 10월 15일).

그 후 1506년(연산군 12)에는 연산군의 향락 행위를 위하여 한강 명소인 망원정을 크게 확장할 것을 명하였다. 이때 지붕은 초가로 하고 건물은 1,000여 명이 앉을 만큼 크게 짓게 하며, 정자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건물은 모두 철거하도록 하고, 정자의 이름도 수려정(秀麗亭)으로 고쳤다. 그러나 이해 9월 중종반정으로 모든 공사를 중지하고 철거함에 따라 망원정도 다시 옛 모습으로 명사들이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이후 망원정은 을축년 대홍수 때 떠내려갔다. 1987년에 터를 발견하여 1989년에 복원하였다. 1990년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망원정 터는 솟을대문이 있으나 강변북로로 인하여 출입이 통제되었고, 건물 뒤 동쪽 아래의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밀집한 주택지에 둘러싸여 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김선화, 「조선시대 서울 한강 누정의 장소성에 관한 연구」, 상명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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