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전(萬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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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대 중건한 경복궁의 자경전 북쪽의 침전.

개설

1867년(고종 4)경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의 북쪽에 침전 일대의 전각으로 조성되었다(『고종실록』 4년 8월 18일). 1876년(고종 13)에 대화재로 내전의 주요 전각이 소실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하였으며 소실된 전각을 복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1885년(고종 22) 경복궁으로 환어했다.

주요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 불타서 없는 상태였으므로 건물을 재건하기 전까지 만경전이 정침전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따라서 내전이 재건되기 전까지 만경전에서 대신과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고종실록』 25년 7월 4일), 왕실의 연회와 존호를 올리는 행사를 열었다.

위치 및 용도

자경전 북쪽으로 만경전(萬慶殿), 만화당(萬和堂), 통화당(通和堂)이 있고, 서쪽에는 건복합(建福閤)이 있다. 경복궁에서 내전의 전각은 정침인 강녕전과 교태전(交泰殿), 신정왕후(神貞王后)를 위한 자경전 외에 당시 왕실에 생존해 있었던 헌종비 효정왕후(孝定王后)와 철종비 철인왕후(哲仁王后), 헌종의 후궁인 순화궁(順和宮) 김씨(金氏)를 위한 중소침(中小寢)으로 덕필당(德必堂), 만경전, 흥복전(興福殿), 만화당이 있었다. 이 중에서 어느 전각에 누가 거처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비를 모실 만한 위상을 가진 만경전과 흥복전이 두 분의 대비를 위한 전각으로 조성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변천 및 현황

만경전과 그 북쪽에 위치한 만화당, 통화전, 건복합은 1867년경 준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1873년(고종 10)의 화재로 소실된 덕필당을 제외하고 이 일대는 경복궁 중건 이후 두 차례의 내전 일곽 화재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고종이 1885년(고종 22) 경복궁으로 환어한 후 만경전은 내전의 정침을 대신하고, 나머지 전각은 왕실 일가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 1920년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과 희정당(熙政堂)이 화재로 소실되자 조선총독부에서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 대조전 일곽을 재건했다. 이때 만경전은 대조전의 징광루(澄光樓) 자리로 옮겨져 현재 경훈각(景薰閣)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만화당은 1897년(광무 1) 어진 봉안처로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경운궁에 이건되었다(『고종실록』 34년 5월 20일). 그러나 만화당의 남행각에 있던 치중문(致中門), 동행각의 응춘문(凝春門), 북행각의 형복당(亨福堂)이 경운궁 함녕전(咸寧殿) 행각의 문 이름, 당호와 일치하고 있어서 만화당이 함녕전을 짓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만화당을 이건한 것으로 보이는 함녕전은 1904년(광무 8) 화재로 소실되었다.

형태

만경전 일곽은 ㅁ자형의 행각 중앙에 일자형 평면의 만경전이 놓여 있으며 동쪽 전퇴에서 동행각으로 2칸의 복도가 설치되었다. 만경전은 자경전의 복안당과 청연루(淸讌樓)를 제외한 본 건물과 거의 같은 규모로서 툇간을 포함하여 정면 9칸, 측면 4칸이다. 중앙에 3칸의 대청을 두고 양쪽에 대칭으로 온돌방 2칸씩을 두고 있으며 4면에 툇간을 두고 있다. 남행각의 문은 「북궐도형(北闕圖形)」에는 양화문(養化門)·광의문(廣宜門)으로 되어 있으나 중건 시 영건도감(營建都監)에서 올린 이름은 대유문(大有門)·유덕문(惟德門)이다. 1887년(고종 24)에 열린 진찬을 정리한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에는 대유문으로 되어 있어서 1887년 이후 문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만경전의 동행각에는 함춘문(咸春門)·인양문(寅陽門)이 있고 서행각에는 의춘문(宜春門)·경성문(景成門)과 건화당(建和堂)이 있다. 북행각의 문은 평재문(平在門)이고 남쪽 제수합과 사이에는 일각문인 보화문(輔化門)이 있다.

만화당은 만경전과 규모와 양식이 같고 행각의 규모도 같으나 다만 동·서 행각이 1칸씩 적다. 만화당의 남행각에는 치중문(致中門)·협강문(協康門), 동행각에는 응춘문(凝春門)·선양문(宣陽門)이 있다. 북행각에는 용성문(用成門)·선가당(宣嘉堂)·형복당(亨福堂)이 있고, 서행각에는 가성문(嘉成門)·건추문(建秋門)이 있다.

건복합은 만경전 서행각 바깥쪽에 있다. 남행각만 있으며 남문은 광서문(廣瑞門)이다. 남행각 밖으로 서쪽 사이 담[間墻]에 만유문(萬有門)이 있고 건복합 북쪽 담장 밖으로 서쪽 사이 담에 서양문(舒養門), 북쪽 담장에 담화문(覃化門)이 있다. 북쪽 담장의 북쪽으로 담장이 또 있고 그 담장에 함화당과 집경당 쪽으로 통하는 읍향문(挹香門)이 있다.

통화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작은 규모이고 행각이 ㅁ자로 있는데, 동쪽으로 외행각이 있다. 통화당의 북쪽 담장문은 현강문(顯康門)이고 이 문을 나서면 육우정(六隅亭)이 있다. 그 동쪽에 녹직처소(鹿直處所)와 녹산 출입문인 영선문(永善門)이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887년에는 내전의 정침에서 치러야 할 행사로서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진찬연을 만경전에서 열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정해]진찬의궤』와 만경전의 도설(圖說)이 전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궁궐지(宮闕志)』「북궐도형(北闕圖形)」『[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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