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승(馬力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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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영국 상인으로 충청도 해안에 와서 조선에 통상을 요구한 인물.

개설

영국 상선의 선장이자 상인으로, 1860년대 중반 조선 일대를 탐사하고 조선의 개항을 주장하였다.

활동 사항

마력승은 모리슨(James Morrison)의 한자식 표기이다. 모리슨은 1865년 10월에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먼저 서해안에서 만난 조선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적대적이었지만, 밀무역이 횡행하는 지역의 조선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하였다. 두 번째는 거의 모든 조선 해안에서 조선인들은 영국 군함에 대한 물자 제공을 거부하였다. 세 번째는 조선 해안에서 이루어지는 밀무역의 주요 수입 품목은 조선인이 선호하는 품목인 셔츠와 무명을 비롯한 모직물·아편·설탕·견직물 등이며,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홍삼·소금·금·철·목재·가죽·종이·목화, 그리고 쌀 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네 번째는 조선에서는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송진이 풍부하지만 무역 품목에서 제외되었으며, 면화는 중국인들에 의해 매우 유행하였다.

모리슨은 위의 탐사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주청 영국공사 웨이드(Thomas Wade)에게 보고하였다. 웨이드는 모리슨의 보고서를 본국 외무부에 보고하면서, 조선에서 상업적 관계를 맺는 것이 영국의 무역에 이익이 될지 모르겠다고 평가하였다.

모리슨은 1866년 2월에 오페르트([戴拔], Oppert, Ernest Jacob)와 함께 영국 상선 로나([羅那], Rona)호를 타고 조선 서해안 일대를 다시 방문하였다. 충청도 평신진(平薪鎭)의 조도(鳥島: 현 충청남도 서산군 대산면 영탑리) 앞바다(『고종실록』 3년 2월 18일),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조금진(調琴津)에 정박한 모리슨 일행은 조선 지방 관리에게 통상을 요구하면서 조선 왕에게 예단을 바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평신첨사김영준(金泳駿), 해미현감김응집(金膺集), 서산군수정재기(鄭在箕)는 외국과 교류하는 행위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모리슨 일행의 통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조선 관헌들은 로나호가 난파된 선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식량 제공을 거부하였다.

그런데 모리슨은 조선 관리들에게 청국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에서 조선 정부에게 영국과 통상을 하도록 지시하는 자문을 보내게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조선 정부는 청 정부에 자문을 보내어서 모리슨의 발언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에 청 예부는 조선 정부에 공문을 발송해서 모리슨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고종실록』 3년 11월 5일).

한편 조선 정부는 1866년 7월 이후에도 조선 해안에 출현해서 조선 관헌에게 조선의 개항을 허락하는 청 정부의 자문이 도착할 것이라고 주장한 인물이 모리슨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런데 그해 7월 영국 선박을 구입해서 조선 해안에 출몰한 이는 오페르트였으며, 모리슨은 7월에 있었던 오페르트의 두 번째 조선행에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조선 정부가 1886년 7월에 조선 해안에 접근한 선박이 영국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장을 모리슨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오페르트, 신복룡, 장우영 역주, 『금단의 나라 조선』, 집문당, 2000.
  • 오페르트, 한우근 옮김, 『금단의 나라 조선기행』, 문교부, 1959.
  • 근대한국외교문서 편찬위원회 편, 『근대 한국 외교문서』 5, 동북아역사재단, 2013.
  • 김기열, 「초기 한영교섭의 전개과정」, 『사학지』 17, 1983.
  • FO: Records created and inherited by the Foreign Office in UK.
  • -FO 17: Political and Other Departments: General Correspondence before 1906, China.
  • -FO 881: Confidential Print(Numerical 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