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東闕)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도성의 동쪽에 자리 잡았던 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울러 이르는 별칭.

개설

동궐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울러 지칭하는 별칭이다. 도성을 기준으로 청계천 북쪽의 경복궁은 북궐, 서쪽의 경희궁은 서궐, 동쪽의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고 한 것이다. 인조대 이후 주로 사용된 궁궐은 창덕궁이며,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이 하나의 궁역(宮域)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이 두 궁궐을 합쳐 법궁(法宮)으로 인식할 때 동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이궁(離宮)인 경희궁을 서궐로 인식하는 것에 상응하는 개념이었다.

일상적으로 동궐은 이처럼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공동의 후원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종묘까지 아우르는 넓은 영역을 의미할 때도 있다.

동궐이라는 말은 영조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영조실록』 영조대왕행장]. 『조선왕조실록』에서 18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용례가 늘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순조실록』 31년 7월 20일). 동궐과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유물로 「동궐도(東闕圖)」와 「동궐도형(東闕圖形)」이 있어서 조선후기 동궐의 범위와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치 및 용도

동궐, 즉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두 궁궐에서 공통으로 이용하는 후원은 서울의 응봉(鷹峯) 자락에 위치한다. 동궐은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을 가장 잘 활용한 궁궐로 평가된다. 경복궁이 엄정한 남북 축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한 것과는 달리, 동궐은 지형에 맞춘 여러 개의 축을 따라 전각들이 횡으로 배열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이 복원되지 않은 상태로 창덕궁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동궐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궁궐이라 할 수 있다.

평지에 반듯한 직사각형의 궁성으로 둘러싸인 경복궁이 정형적인 공간 구조를 갖춘 데 비해, 응봉에서 내려오는 산자락을 끼고 있는 동궐은 건물의 배치도 지형에 따라 편의적으로 응용되었다. 후원은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창덕궁이나 창경궁 어느 한쪽의 것이 아니라 두 궁궐에서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는 두 궁궐이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궁궐이면서 동시에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으로 묶이는 관계임을 잘 보여준다.

창경궁은 그 자체로 궁궐로서 필요한 공간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외전(外殿)이 빈약하고 내전(內殿)이 발달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즉 창경궁은 주로 주거 생활을 위한 공간이 발달된 반면, 도총부(都摠府)를 제외하면 궐내각사라고 할 만한 관서가 구비되지 않았고, 선원전(璿源殿)도 없었다. 결국 창경궁은 명목상으로는 독립적인 궁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창덕궁에 부족한 거주 공간을 보완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궁궐이었다. 따라서 창덕궁과 묶어서 하나의 궁궐 곧 동궐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상해, 『궁궐·유교건축』, 솔출판사, 2004.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홍순민, 「조선왕조 궁궐 경영과 “양궐체제”의 변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