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東國正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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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의 명을 받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韻書).

개설

세종의 명으로 편찬하여 간행하였는데, 훈민정음이 반포된 다음해인 1447년(세종 29) 음력 9월에 완성되고, 이듬해인 1448년(세종 30) 음력 10월에 반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은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恒),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강희안(姜希顔), 이현로(李賢老), 조변안(曹變安), 김증(金曾)들이 담당하였다. 신숙주가 ‘동국정운서’를 써서 책을 지은 이유를 밝혔는데, 1375년 편찬된 중국 운서인 『홍무정운(洪武正韻)』에 대해 동국(東國 : 즉 우리나라)의 표준적인 운서라는 뜻으로 그 이름이 지어졌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실록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세종조의 운서편찬사업과 같은 의도로 계획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조의 중요한 운서편찬사업으로는 『사성통고(四聲通攷)』 ·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 『동국정운』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1444년(세종 26) 2월부터 동시에 착수하지 않았나 한다. 세종은 1443년(세종 25) 12월에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그 다음해 2월 14일에 의사청(議事廳)에 물어, 훈민정음으로써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였다. 이는 원(元)나라의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를 뜻하는데, 그 번역본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동국정운』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운회』의 번역본을 탈바꿈시킨 것이 『동국정운』일 가능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운회』의 반절음을 국어음으로 번역하여 훈민정음으로 표기하고, 훈민정음의 초성 차례에 따라 글자들의 배열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열 순서는 『홍무정운역훈』이나 『사성통고』와는 달리 작시(作詩) 위주의 운서가 아니라, 심음(審音 : 음을 탐구함.) 위주의 운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써 세종조의 운서편찬사업이 작시용과 심음용의 이원화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체계에서 특징적인 것은 한자음을 ‘초성ㆍ중성ㆍ종성’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인 바, 이는 중국 음운학에서 한자음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과 다르며, 당시 학자들이 한자음을 해석하는 데 중국 음운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중국어 중고음(中古音)의 음운 체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하면서도,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1297년)나 『홍무정운(洪武正韻)』(1375년)의 체계, 그리고 그 당시 한자음의 음형(音形)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동국정운』에서 제시된 한자음은 예로부터 한반도에서 써온 현실 한자음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한자음을 일반적으로 ‘동국정운식 한자음(東國正韻式漢字音)’이라 부를 수 있다.『동국정운』 편찬자들은 현실 한자음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여, 이상적인 표준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에 몽골어의 영향을 받아, 송나라 이전의 한자어 발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전해 오다가(『세종실록』 29년 9월 29일),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첫째 권과 여섯째 권의 두 책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간송문고에 있으며, 전 6권 가운데 두 책만이 남아 있으나,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제목이 있는 표지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正韻(정운)’이라고 되어 있으며,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대자(大字)는 목활자(木活字)이고, 소자(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이다. 자체(字體)는 본문 대자가 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묵개(墨蓋)의 음각한 글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 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 뒤 중종 때의 문신인 심언광(沈彦光)의 집안에 전해 오던 6권 6책의 전질이 1972년에 강릉심교만(沈敎萬)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 간송문고본과 같은 인쇄본인데,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背裝)으로 개장하면서 책의 위와 아래를 약간 절단하였고, ‘선사지기’가 없으며, 제전(題箋) 아래에 차례를 나타내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묵서(墨書)로 가필한 점이 다르다. 형태를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 작은 글자는 갑인자, 서문은 갑인자 대자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서문 7장, 목록 4장, 권1은 46장, 권 2는 47장, 권3은 46장, 권4는 40장, 권5는 43장, 권6은 4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지 사항

총 6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활자본이다. 세로 32.0cm 가로 19.8cm이고,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간송미술관과 건국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신숙주는 서문에서 『동국정운』의 편찬은 세종이 지시한 4대 기본방침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즉 첫째, 민간에 쓰이는 관습을 널리 채택할 것 둘째, 옛날부터 전해 오는 서적을 널리 상고할 것 셋째, 첫 글자가 여러 개의 음으로 쓰일 때는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을 기준으로 할 것, 넷째 옛날부터 전해 오는 협운(協韻: 어떤 음운의 글자가 때로는 다른 음운과 통용되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고려할 것 등이었다. 이 방침에 따라, ① 91운 23자모의 체계를 세우고, ② 반절(反切) 대신에 훈민정음으로써 표음(表音)하고, ③ ‘ㄷ입성(入聲)’은 민간의 발음에 따라 ‘ㄹ’로 바꾸되, 입성의 자질을 살리기 위하여 ‘ㅭ’과 같이 표기하였다.

권1의 권두에 신숙주의 ‘동국정운서(東國正韻序)’와 ‘동국정운목록(東國正韻目錄)’이 있고, 그 다음에 본문이 있는데, 이 본문은 권6에까지 이어지고, 각 권은 26운목(韻目)의 배열 차례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본문은 먼저 운목을 운류 별로 표시한 뒤 행을 바꾸어 자모(字母)를 음각(陰刻)으로써 표기하였고, 자모 바로 밑에는 훈민정음으로 음을 표시하였다. 한 자모 아래에는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의 순서로 그 자모에 속하는 한자들을 배열하였다.

각 글자의 뜻은 풀이하지 않았으며, 한 글자가 여러 음을 가질 경우 그 글자 바로 밑에 세주(細註)를 붙였다. 편운체계는 신숙주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91운 23자모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운서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골격이 되는 동시에 당시의 한국어 음운체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당시의 우리나라 한자음을 명확히 구현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송대(宋代) 등운학파(等韻學派)들의 이론체계나 명대(明代) 『홍무정운』의 언어정책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적잖게 현실과 맞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와 같이 『동국정운』에서 제시된 한자음은 예로부터 한반도에서 써온 현실 한자음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이 한자음을 일반적으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라 부르는데, 이는 현실 한자음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여 이상적인 표준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동국정운』 서문에 따르면 현실 한자음의 ‘잘못’은, ‘① 계모(溪母 : [kʰ])의 대부분이 견모(見母 : [k])에 들어가 있다. ② 계모의 일부가 효모(曉母)에 들어가 있다. ③ 탁음이 없다. ④ 성조에서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이 구별되지 않는다.

⑤ 입성 중 단모(端母 : [t])로 끝나야 할 것이 내모(來母)로 끝난다. ⑥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 중순음(重脣音)과 경순음(輕脣音),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正齒音)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국정운』의 성모(聲母) 체계는 훈민정음의 초성과 같은 23 자모 체계로서, 중고음의 삼십육자모(三十六字母) 체계와는 다르다. 자모는 중국 음운학에서 쓰이는 자모를 사용하지 않고, 훈민정음에서 쓰인 자모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중국 음운학의 견모(見母)는 『동국정운』에서 군모(君母)가 되며, 계모(溪母)는 쾌모(快母)가 된다. 성모에 관한 특징은, ① ‘전탁음’은 ‘ㄲ, ㄸ, ㅃ, ㅉ, ㅆ, ㆅ’을 인정하였다. 탁음에 관해서는 『동국정운』 서문에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中國無異, 而於字音獨無濁聲(한국 말소리에서 청탁의 구별은 중국과 다름이 없으나 유독 한자음에서만 탁성이 없다)”라고 쓰여 있어, 한국어 ‘전탁음’은 유성음이 아니라, 경음으로 파악하였으며, ② 계모(溪母 : [kʰ])는 ‘쾌’를 제외하고 현실 한자음에서 모두 ‘ㄱ’로 나타나지만 『동국정운』에서는 중고음에 의거해 ‘ㅋ’로 했고, ③ 설두음과 설상음, 중순음과 경순음, 치두음과 정치음, 설두음과 설상음의 구별, 중순음과 경순음의 구별, 치두음과 정치음의 구별이 없지만 순음의 무겁고 가벼움에 관해서는 『훈민정음해례』에 기술이 있는데, 『홍무정운역훈(光武正韻譯訓)』(1455년)에서는 중순음 ‘ㅂ, ㅍ, ㅃ, ㅁ’과 경순음 ‘ㅸ, ㆄ, ㅹ, ㅱ’, 치두음 ‘ᄼ, ᄽ, ᅎ, ᅔ, ᅏ’과 정치음 ‘ᄾ, ᄿ, ᅐ, ᅕ, ᅑ’이 벌써 사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같은 자모들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에 이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④ 유모(喩母 : [j]) 3등이 『동국정운』에서 ‘ㆁ’로 나타나는데, “고금운회거요”에서 유모 3등의 반절 상자(反切上字)가 의모(疑母)와 통용된 것과 같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비슷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남광우, 「동국정운식 한자음연구」, 『한국연구총서』, 1966.
  • 박병채, 『홍무정운역훈의 신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3.
  • 유창균, 『동국정운연구』, 형설출판사, 1966.
  • 이동림, 「동국정운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1970.
  • 정연찬, 『홍무정운역훈의 연구』, 일조각, 1972.
  • 河野六郎, 「東國正韻と洪武正韻譯訓に就いて」, 『東洋學報』27-4 , 1940.
  • 홍기문, 『정음발달사』, 서울신문사출판국,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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